독립군 3500명 배출 신흥무관학교… 서간도 비밀거점 통해 학생들 모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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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 단국대 교수 논문

“장세담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일본을 거스르는 불량한 조선인) 청년들 사이에서 유력한 자로서 경성(현 서울)과 안동현(중국 단둥), 봉천(선양) 등을 왕래하며 불평(不平) 동지를 규합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헌병대가 1914년 10월 24일 작성한 정보보고 문건이다. 헌병대는 “장세담의 용건은 청년들을 만주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장세담은 단국대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범정 장형 선생(1889∼1964)의 가명. 그는 서울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제의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신흥무관학교 입학생 모집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1914년 보성전문학교 재학생이던 김연우와 고정식이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을 비롯한 신민회원들이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중국 지린(吉林) 성 류허(柳河) 현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무려 3500명의 독립군을 양성한 항일 무장투쟁 전초기지였다.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군 주요 간부들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엄혹한 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가 많은 학생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모집했는지 미스터리였다.

박성순 단국대 교수는 최근 ‘우당 이회영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발표한 논문에서 서간도에 산재된 비밀 거점을 통해 신흥무관학교 입학생을 모집한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입학생들은 서울에서 평양, 신의주를 거쳐 안동현에 1차 집결했다. 여기서 일부는 환런(桓仁), 퉁화(通化)를 거쳐 류허 현(신흥무관학교)으로 들어가거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번화한 선양(瀋陽)을 거쳐 메이허커우(梅河口)를 통과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곡상과 무역상, 숙박업자 등으로 위장한 안동현 내 비밀 연락거점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넘어온 입학생이나 독립운동가들을 신흥무관학교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예컨대 경기 용인에서 태어난 유학자 맹보순은 1910년 안동현으로 망명한 뒤 상점을 운영하며 신흥무관학교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당시 안동현에는 1911년 일본 동양척식회사의 토지 강탈을 계기로 이주한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있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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