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의 오늘과 내일]‘인사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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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쾌속 질주’하던 문재인 정부가 인사에 발목을 잡혔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을 못 지킨 것이 단초였다. 하지만 “야당은 제 눈의 들보부터 보라”며 문 대통령을 감싸는 민간 여론은 강고하다. 문 대통령은 원칙의 세부 기준을 만들면서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청와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남편이 밝힌 위장 전입의 내용이 팩트에 부합하는지 검증하지 못했다. 대통령의전비서관실 탁현민 행정관 인선도 유사하다. 그는 지난해 문 대통령의 히말라야 트레킹에 동행했다. 또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행사 기획 업무에 관여했다. 문 대통령은 탁 행정관이 10년 전 노골적으로 여성의 성을 비하한 책을 썼던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많은 국민이 선선히 수용할 것으로 오판했던 걸까.

인사 기준은 2가지다. 위장 전입처럼 후보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후보자에 대해 주변에서 어떤 판단을 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확장시켜 인사 단행 시 국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하는 것이다. 이른바 ‘평판 조회’다. 여기에 탁 행정관 인선을 대입해 보자. 문제의 책을 몰랐다면 중요한 사실 관계를 놓친 ‘부실 검증’이다. 만약 알았다면 두 번째 인사 기준, 여론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물론 앞선 정부들과 달리 2개월여의 정권인수 기간 없이 인선을 서두르다 간과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인사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국가정보원 국내 정보 파트 폐지와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에는 정부 각 기관과 주요 기업, 각종 단체, 전국 각 지역을 담당하는 정보관(IO)들이 있다. 모두 국내 정보 파트 소속이다. 이들은 정부 요직에 갈 만한 인사들의 존안(存案) 자료를 작성한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선 사정기관 존안 자료가 사안별로 인사에 활용된 적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정원 존안 자료를 경찰 존안 자료와 함께 인사 검증에 썼다. 다만 박근혜 정부 중반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은 “경찰 정보를 믿지 못하겠다”며 경찰에서 존안 자료를 받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찬용 인사수석은 “존안 자료는 참고자료일 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국정원 국내 정보 파트를 폐지해도 인사의 첫 번째 기준인 사실 관계 파악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경찰 존안 자료가 있고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에서 후보자의 부동산과 금융 거래 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판 조회’는 제한된다. 팩트가 아닌 의견이라 비교 확인을 해야 객관성이 확보되는데 경찰 존안 자료에 주로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찰권 비대화’의 부작용이 생긴다.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실현되면 경찰이 수사권에 인사 정보권까지 갖게 된다. 또 정보의 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역대 정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인사 정보의 깊이와 폭에서 국정원이 경찰에 앞서 있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 존안 자료를 쓰지 않으려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처럼 후보자를 샅샅이 검증할 대안부터 만들어야 한다. FBI는 인사 시점 기준 최근 7년 동안 후보자의 거주지를 알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평판 조회’를 한다. 이런 식의 심층 검증이 안 되면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인사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문재인 정부#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인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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