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난청이 치매가능성 높여…” 청력 향상위한 부부의 꾸준한 노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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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일선에서 나란히 뛰는 부부가 있다. 부부의 경영 분야는 각각 난청증과 뇌전증(간질) 치료 장비다. 스타키그룹 심상돈 대표와 동산히어링 박정희 대표 부부의 경영철학과 삶을 들여다봤다. 》
 
스타키그룹 심상돈 대표
 
국내 보청기 판매 1위 스타키그룹은 미국 미네소타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청각 전문 기업 스타키히어링테크놀로지스(Starkey Hearing Technologies)의 한국지사다. 세계 스타키 50개 지사 중 가장 선진화된 경영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국내 보청기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35%다. 금강보청기, 소리샘보청기, 스타키보청기, 조은소리보청기, 굿모닝보청기, 복음보청기의 6개 자회사를 통해 청각 관련 기업의 리딩 컴퍼니로써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1996년부터 21년째 스타키그룹을 이끌고 있는 심상돈 대표는 국내기업 최장수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서울상공회의소 서울경제위원회 위원장과 (사)한국대강소기업상생협회 회장,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공동대표를 겸임하며 지역사회발전 및 장애인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그의 행보를 보면 기업가라기보다 사회운동가처럼 보인다. 기업가라면 응당 이윤창출이 제일 목표일 텐데 이보다는 난청 퇴치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려 활동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스타키그룹은 ‘소리로 사랑을 나누는 기업’이라는 비전 아래 미국 본사의 스타키청각재단과 연계해 ‘소리사랑 나누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무료 청각검사, 보청기 무상지원, 참전용사 등 난청인을 위한 보청기 기증 활동을 하고 있다. 심 대표는 “올해 설립 50주년인 미국 본사도 청각재단을 통해 세계 각국의 난청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스타키그룹도 한국의 난청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매년 매출의 일정부분을 난청을 비롯한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는 난청인을 위한 법제도 마련에도 열심이다. 지난달 14일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문재인 대선후보 초청강연에서도 난청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문 후보는 “(난청인에 대한 보청기 지원도) 정부 건강보험의 보장 체계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화답했다. 보청기도 임플란트처럼 보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당시 심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는 유투브에도 올라와 있다.

심 대표가 보청기에 주목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난청이 퇴행성 치매 발생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난청으로 외부 자극에 둔감해지면 치매 발병률이 높아진다”며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30년대 후반에는 연간 국가 치매 관리비용이 국방비를 추월하고, 2050년에는 106조 원을 넘어서서 국방비의 2배에 육박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스타키그룹은 21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다. 비결은 역시 난청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일례로 스타키는 분실한 제품에 대해 보상제작을 해주고 있다. 보청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보청기 크기가 작아져 어르신들이 기기를 분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타키는 경찰서에서 발급한 분실확인증을 갖고 오면 반값에 기기를 다시 제작해준다. 분실보상 초기에는 무상으로 만들어 줬다.

심 대표는 “직원들에게 ‘We never say no’(안 된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마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고객이 없으면 기업도 없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동산히어링 박정희 대표


스타키그룹 심상돈 대표의 부인 박정희 대표는 고도 난청인을 위한 청각 임플란트 기기와 뇌전증 환자를 위한 미주신경자극기를 공급하는 ㈜동산히어링의 CEO다.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난청인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보청기로 효과를 보기 어려운 고도난청과 감각신경성 난청, 노인성 고도난청인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각 임플란트 시술자가 늘고 있다. 실제로 보청기와 청각 임플란트 기기들은 상호대체제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보청기는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청각 임플란트 기기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박 대표는 난청인들의 청력 향상을 위해 보청기와 인공와우를 비롯한 청각 임플란트 기기들을 난청인들에게 알리고, 알맞은 청력기기를 선택하도록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자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산히어링이 수입 공급하는 메델의 인공와우는 청각기관인 달팽이관, 와우 내의 세포, 유모세포 등의 문제로 고도 난청이 있는 환자에게 유모세포의 기능을 대신할 전극을 와우 내에 삽입해 청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하는 기기다. 머리뼈를 진동시켜 소리를 전달하는 골전도 임플란트는 물론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공중이도 공급하고 있다.

박 대표는 뇌전증 환자를 위한 벨기에 리바노바(Liva Nova)사의 미주신경 자극 치료시스템(VNS)도 수입, 판매하고 있다. 간질의 다른 이름인 뇌전증은 발작 증상이 없으면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기 쉽지 않은 질환이다. VNS는 현재 시행되는 뇌전증의 비약물 치료 중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주목 받는 치료법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리바노바 사가 태국 방콕에서 아시아 지역 수입업체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행사에서 아시아 딜러 중 유일하게 ‘Excellence Award Neuromodulation(신경조절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경영혁신, 매출, 성장률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올랐던 것. 이날 박 대표는 “한국에서도 뇌전증 환자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뇌전증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박 대표는 2월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식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난치성 뇌전증 환우에게 VNS 치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협약을 한국뇌전증협회와 체결했다. 또 매년 뇌전증 유소년 축구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박 대표는 CEO이기에 앞서 팝페라 디바다. 이탈리아 베르디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베르디 100주년 기념 이탈리아 투어 콘서트 등에 참여했으며, 현재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 보컬교수이자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와인에도 조예가 깊어 와인어드바이저 자격증을 취득해 대학에서 소믈리에 특강도 하고 있다.

박 대표가 난청인과 뇌전증 환우들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것도 예술적 배경에서 나온 따뜻한 리더십에 기인한다는 평가다. 그는 “청각장애인과 뇌전증 환우들은 병이 아니라 편견 때문에 아프다. 인식개선에 힘써 이들이 당당하게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부부 경영인



심상돈 박정희 부부는 한편으로는 경영인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활동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취미를 공유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이들은 일을 통해 서로에게 더 의지하는 관계다.

음악가였던 박 대표를 경영의 세계로 끌어들인 건 남편 심 대표였다. 영업맨 출신의 심 대표는 박 대표에게 지금도 ’경영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박 대표는 남편이 새롭게 사업을 맡아 끌고 가보라고 했을 때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한 그가 CEO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은 터였다. 하지만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는 등 기본기부터 착실히 다진 끝에 지금은 열정과 능력을 함께 갖춘 실력 있는 성공한 여성기업인으로 변신했다.
물론 이런 성과의 뒤에는 남편의 끊임없는 지원과 배려가 있었다. 동산히어링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청각 임플란트 기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심 대표의 스타키그룹과 보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사업구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부인 박 대표의 예술적 감각 또한 남편에게 뛰어난 영감을 준다고 한다. 스타키그룹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회활동 중 하나가 오페라, 뮤지컬 등의 예술공연에 청각장애인을 초청하는 것이다. 귀 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야말로 청각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성악가 출신인 부인이 아니었다면 쉽게 생각해 내기 어려운 아이디어였다.

심 대표는 20년 넘게 미술 작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하고 있다. 이 역시 부인의 영향이 컸다. 심상돈 대표의 뛰어난 경영능력과 박정희 대표의 예술적 감수성이 만나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둘이 만들어 내는 빛나는 시너지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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