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삼 전문기자의 맨 투 맨]죽었구나, 살았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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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미집행 10년째인 2007년 12월 30일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 동아일보DB
사형 미집행 10년째인 2007년 12월 30일 열린 사형제폐지국가 기념식. 동아일보DB
이형삼 전문기자
이형삼 전문기자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죽다 살아난’ 것처럼 안도했을 사람들이 있다. 65명의 사형수들이다. 대선 과정에서 홍준표 후보는 “사형집행을 안 하니 연쇄살인이 계속 일어난다”고 했다. 중도 사퇴한 남재준, 자유한국당 경선에 나선 김진태 등 보수 후보들도 사형집행 재개를 주장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FN)이 대선을 겨냥해 사형제 부활 당 강령을 폐기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 12월 30일이다. 그날 23명이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사형수들의 일상과 최후를 취재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내 눈으로 본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집행일 아침, 면회 통보에 감방을 나선 사형수는 교도관들에게 양팔이 붙잡혀 면회실과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면서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다. 그때부터 극심한 공포에 엉덩이를 뒤로 빼고 10cm도 안 되는 보폭으로 기다시피 형장으로 끌려간다. 물과 담배를 연거푸 청한다. 냉수를 건네면 더운물도 달라고 한다. 그 순간이라도 삶을 연장하고 싶어서.”


그때 만난 사형 폐지 운동가들을 수소문했다. 60대 초중반이던 그들은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현역’이었다. 문장식 목사(82)는 “한국은 20년째 집행이 없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집행이 계속되는) 중국, 일본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려던 차에 집행론이 불거져 다들 초긴장 상태였다”고 전했다. 사형수 74명의 집행 현장에 입회했던 문 목사는 “참혹한 집행 광경을 목격하면 누구도 집행 얘기를 입에 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사형수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 펴낸 책의 제목은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다. 사형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집행이 있을까 봐 ‘죽었구나’ 하고, 오후를 넘기면 ‘살았구나’ 한다는 의미다. 그는 1991년 12월에 지켜본 한 여성 사형수의 집행 현장을 잊지 못한다.

“보통 10∼13분이면 절명하는데 여자는 몸이 가벼워 더 오래간다고 했다. 집행 교도관들이 휘장 뒤에서 하는 말이 들렸다. 한 직원이 ‘갔어?’라고 물으니 다른 직원이 ‘오래가’라고 답했다. 조금 뒤 ‘가버렸어?’ 하니 ‘아직 멀었어’ 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문 목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형제가 폐지될 것으로 기대한다. 2004년 그가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사형수 얘기를 꺼내자 노 대통령은 “사형수들이 그토록 괴롭게 살아가느냐”며 실태 파악을 지시했고 그때 문 대통령이 시민사회수석으로 배석했다고 한다(노 대통령은 사형수 6명을 무기형으로 감형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사형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일부 사형 반대론자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절충안으로 꼽는다. 조성애 수녀(86)는 “20년 넘게 갇혀 있는 사형수들은 이미 종신형을 산 거나 마찬가지다. 그 세월이면 대부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고 호소했다. 이상혁 변호사(82)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절대적 종신형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가혹한 형벌이라 교화 가능성이 낮고 위헌 소지도 있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명(餘命) 기준 종신형’을 제안했다. 평균 여명의 3분의 2 정도 형기를 채운 장기 수감 사형수에게 가석방 심사 기회를 주는 방안이다.

하지만 사형제 찬성 여론이 60%를 넘고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다 살인 피해자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고려하면 진보 정권이라고 사형 폐지론이 추진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요즘은 매우 제한적으로 사형을 선고하며 오판(誤判) 가능성도 낮다.

누구의 손도 쉽게 들어주기 힘든 현실에서, 사형제는 존치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현재의 관행은 어쩌면 가장 절묘하게 균형 잡힌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보수도 진보도 암묵적으로 ‘운용의 묘(妙)’를 발휘한다는 전제 아래서. 놀랍게도, 1000년 전에 시성(詩聖) 소동파가 융통성 있는 해법을 내놓았다.

“요임금 때 법관 고요(皐陶)가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일이 생겼다. 고요가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요임금은 용서하라고 했다. 고요는 세 번이나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요임금은 세 번이나 용서하라고 명령했다. 천하가 고요의 법 집행이 준엄함을 두려워하고 요임금의 형벌 적용이 관대함을 좋아했다. 상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을 때 상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인자하고, 벌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정의롭다. 군자는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선 안 된다.”(‘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
#사형수#사형 폐지 운동#사형 반대론자#종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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