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 잃고 염전 일궈 소금 기부… 세상의 소금인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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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부부의날 앞두고 ‘올해의 부부’ 선정된 강경환-정순희씨

16일 ‘올해의 부부상’을 수상한 강경환 정순희 씨. 강 씨는 “아내와 함께한 세월은 기적”이라며 지뢰 폭발 사고로 뭉뚝해진 두 팔을 벌려 아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6일 ‘올해의 부부상’을 수상한 강경환 정순희 씨. 강 씨는 “아내와 함께한 세월은 기적”이라며 지뢰 폭발 사고로 뭉뚝해진 두 팔을 벌려 아내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 말끔한 옷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부가 있었다. 남편의 크고 낡은 양복도, 아내의 옅은 화장도 최신 유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색한 건 옷차림과 화장뿐이 아니었다. 남편의 양복 소매 끝으로 나온 ‘손’은 긴 손가락 대신 짧고 뭉뚝했다. 아내는 남편의 뭉뚝한 손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이날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는 부부의날(21일)을 앞두고 세계부부의날위원회 등이 주최한 ‘올해의 부부상’ 시상식이 열렸다. 두 사람은 ‘올해의 부부’로 선정된 강경환 씨(57)와 아내 정순희 씨(56)다. 남편의 뭉뚝한 손은 45년 전 사고 때문이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놀던 13세의 개구쟁이 강 씨는 바닷물에 떠내려 온 깡통을 집어 들었다. 6·25전쟁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였다. 지뢰가 폭발하면서 강 씨는 두 손을 잃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강 씨는 남아있는 팔 부위에 낫을 묶어 남의 논과 밭을 일궜다. 28세 때 서울의 한 교회를 찾은 강 씨는 정 씨를 만났다. 주름지고 못생긴 남편의 뭉툭한 손을 먼저 잡은 건 희고 고운 아내의 손이었다.

신혼생활은 염전에서 시작됐다. 남편은 결혼 후 당시 염전사업을 하던 이웃을 찾아가 “일할 수 있게 1만 평만 빌려 달라”고 사정했다. 남편은 “그게 아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회상했다.

강 씨는 누구보다 성실했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에 일어나 염전이 있는 서산 앞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 내는 밀대작업이 가장 큰 일이었다. 커다란 삽을 어깨와 팔에 끈으로 고정시켜 일하다 보니 소금 생산량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남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150m² 남짓한 소금창고에 뽀얀 알갱이가 조금씩 쌓여갔다.

소금이 창고에 3분의 1 정도 쌓인 어느 날 남편은 무언가 결심한 듯 한밤중에 소금을 포대에 채웠다. 그길로 동네 홀몸노인들을 찾았다. “시장에 가서 팔면 돈이 될 겁니다”라고 쓰인 종이를 포대에 붙여 문 앞에 뒀다. 다음 날 어르신들은 “간밤에 소금산타가 다녀갔다”며 좋아했다.

당시 서산 일대엔 유독 소년소녀 가장이 많았다. 이들에게도 남몰래 소금을 나눠줬다. ‘낮 선행’은 아내 몫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감겨 주는 일도 했다. ‘소금산타’의 선행은 10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도움이 고마웠던 한 이웃이 숨어서 부부의 선행을 몰래 지켜봤다. 선행이 알려진 뒤 부부는 매달 주민센터를 찾아 소금 수십 포대를 전달하고 있다.

부부는 다달이 받는 장애인연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했다. 30년 가까이 일군 소금 중 강 씨 가족의 생활비보다 이웃을 위해 쓰인 것이 더 많다.

남편은 아직도 아내를 ‘예쁜 천사’로, 아내는 남편을 ‘미남 소금장수’라고 부른다. 이들 부부가 일군 소금을 맛본 이웃은 “이상하게 소금이 달다”며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는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부부의 날#올해의 부부#강경환#정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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