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생일축하… 남편 추모… 사연 담긴 ‘나무 가꾸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동네 꽃길, 숨쉬는 서울]<4> 기업 사회공헌 ‘탄소상쇄숲’

서울시와 한화그룹의 ‘72시간 도시 생생 프로젝트’에 선정된 그린핑거스 팀이 관악구 난곡동의 허름한 마을 쉼터를 녹지로 재생시킨 현장. 한화그룹 제공
서울시와 한화그룹의 ‘72시간 도시 생생 프로젝트’에 선정된 그린핑거스 팀이 관악구 난곡동의 허름한 마을 쉼터를 녹지로 재생시킨 현장. 한화그룹 제공
식목일을 앞둔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는 삽과 묘목을 든 시민 500여 명이 모였다. 서울시가 조성하는 제11호 ‘탄소상쇄숲’에 나무를 심으러 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져왔다. 자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부모님, 미세먼지가 줄기를 바라는 청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는 여성 등 다양했다.

이들이 가꾸는 탄소상쇄숲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나무를 심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하는 숲이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금호타이어, 이브자리 같은 기업과 함께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의 하나로 이 같은 숲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11곳의 숲 8만여 m²에 나무 3만4000여 그루를 심었다.

탄소상쇄숲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관청과 기업이 생색내듯 나무만 심고 끝나지 않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시민의 땀방울과 사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자연재해로 나무가 훼손된 숲이나 빈 땅을 선정하고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면 시민들이 나무를 심는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16일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가 자동차산업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만큼 숲을 가꿔서 저(低)탄소사회 구현에 동참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심은 나무는 30년간 나무를 심은 시민의 이름으로 관리한다. 11호 숲은 서울시가 온라인으로 받은 사연 가운데 우수 사연을 낸 시민을 선정했다. 이들 500여 명은 팀별로 이름과 소원을 담은 명패를 나무에 직접 달았다. 이날 쌍둥이 아들과 온 싱글맘 성민정 씨는 “아빠처럼 멋진 버팀목이 되어 주라는 의미에서 아이들 이름이 적힌 나무들을 선물했다”며 웃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처럼 시민과의 ‘녹색 컬래버레이션(협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각 기업의 주요 사업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도시 녹화(綠化)라는 명분도 이루는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2014년부터 서울시와 ‘72시간 도시생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72시간 안에 서울의 버려진 공간을 재생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시민에게서 제안 받아 이를 실천에 옮긴다. 지난해에는 밤이 되면 으슥해지던 송파구 낡은 마을 쉼터에 텃밭을 만들고 울타리 모양 의자를 놓아 안전한 분위기로 바꾸는 것 등 8개 팀의 작품이 빛을 봤다. 올해는 23일까지 ‘불꽃 아이디어로 공터를 공감터로’라는 주제로 아이디어 신청을 받는다.

한국공항공사는 앞으로 5년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인근의 골목길을 꽃과 나무로 가꾼다. 비행기 소음이 심한 지역인 만큼 학교 주변에 소음을 줄여주는 덩굴식물로 벽을 만드는 등 녹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주민들 삶의 질도 함께 개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녹지를 조성한 뒤에는 학교에 ‘녹색동아리’를 만들어 이를 관리하도록 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도 유도할 계획이다.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2013년 11곳에서 지난해 41곳으로 늘었다. 서울시 조경과 정성문 주무관은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공헌활동인 만큼 이미지 개선 효과가 크다”며 “환경 개선은 특정 계층이 아닌 서울시민 모두에게 보편적인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나무#탄소상쇄숲#식목일#서울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