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누구나 품고 있지 가슴속 슬픈 이야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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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0일 수요일 흐림. 카우보이의 콧노래. #247 Poison ‘Every Rose has Its Thorn’(1988년

‘카우보이란 저마다의 슬픈 노래를 갖고 있다.’

정확히 ‘쌍팔년도’였다. 1988년 당시 미국 인기 록 밴드 포이즌이 발표한 록 발라드 ‘Every Rose Has Its Thorn’(사진). 거기서 제목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 노랫말이 그거였다. ‘장미란 저마다 가시를 갖고 있지/밤이 새벽을 품고 있듯/카우보이란 저마다 자신만의 슬프디슬픈 노래를 부르듯/장미란 저마다 가시를 갖고 있지’ 이 슬프디슬픈 후렴구에서 가시처럼 심장에 날아와 콕 박힌 대목이 카우보이 운운이었던 거다.

‘첫 번째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80년대 헤어메탈 밴드의 결정판일 것이다.’

음반 리뷰 사이트 올뮤직닷컴의 필자 배리 웨버 씨는 포이즌을 한마디로 이렇게 설명했다. 왜 그맘때쯤 헤어메탈(hair metal·긴 머리와 짙은 화장, 방탕한 삶을 다룬 가사로 주로 주목받은 1980, 90년대 헤비메탈의 한 조류) 음반엔 한두 곡씩 발라드가 들어갔다. ‘즐기자고, 인생 뭐 있어? 헤이, 거기 아가씨, 외로운 밤을 함께하자고’ 따위의 통속적 노랫말이 토핑된 지저분한 메탈 사운드의 곡들이 멈추고, 문득 한 줄기 빛처럼 청아한 기타 화음의 서주(序奏)가 등장하면 슬슬 청바지 뒤춤에 찔러둔 지포 라이터를 꺼내야만 한다. ‘장미란 저마다 가시를 갖고 있지…’ 회개가 갑작스러우면 보통 억지스럽다. 그래도 탕아의 귀향 이야기는 언제나 눈물난다.

2012년 12월 15일의 밤을 기억한다. 난 미국 뉴욕에 있었고 무척이나 추웠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 대신 보러 간 로큰롤 뮤지컬 ‘록 오브 에이지스’에도 그 노래가 등장했다. 포이즌의 ‘Fallen Angel’처럼 도시의 불빛에 미혹돼 캔자스 주의 집에서 가출한 셰리 크리스천은 할리우드에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본다. 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각자의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이 후렴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벽돌 벽을 뚫고 나온 증기기관차처럼. ‘카우보이란 저마다 자신만의 슬픈 노래를 갖고 있지.’

말안장 닦으며 별일 없다는 듯 흘리는 휘파람의 선율은 가장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씻겨 내려간다. 사실은 그 작은 멜로디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장미는 가시를, 밤은 새벽을 가졌다. 먼저 보이는 것은 늘 꽃이나 어둠이지만 진짜는 우리를 늘 조용히 뒤에서 기다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카우보이#콧노래#배리 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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