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가는 그대, 술 한잔하고 떠나시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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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원, 옛 송서 48편 묶은 ‘送序, 길 떠나는 그대에게’ 출간

“좋은 술은 아니지만 사양 말고 한껏 드시게/시골로 돌아가는 동년 노생을 보내며(送同年盧生還田居序)”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1168∼1241)는 노 씨 성을 가진 동년(同年·함께 과거에 합격한 동기생을 가리키는 말)에게 이 같은 시를 남겼다.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는 떠나는 이에게 글을 지어 보내는 것이었다. 송서(送序) 문화는 중국 수·당 시대부터 시작해 고려 중엽 한반도로 퍼졌고, 조선시대 들어 꽃을 피웠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옛 문인들의 송서를 묶은 책 ‘송서(送序), 길 떠나는 그대에게’(사진)를 펴냈다. 이번 책에는 총 48편의 송서가 담겨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대에게’, ‘사신으로 나가는 그대에게’, ‘유람으로 떠나는 그대에게’ 등 주제별로 묶인 5장으로 구성됐다.

송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시대 흐름과 선조들의 사상의 흔적을 좇을 수 있다. 고려시대 이곡이 전임 수령들이 모두 죽어 관료들이 기피했던 지역에 자원한 친구 김연을 응원한 글에선 우정과 공직자의 자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정약용이 청나라로 가는 이기양에게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관련한 선진 문물을 배워 오라고 부탁한 글에선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름을 인정하고, 교류하는 자세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리학적 이상을 추구한 조선 사림파의 사조(師祖) 김종직이 승려 계징에게 쓴 송서에선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에 대한 자신감과 다른 신념을 가진 상대를 존중하는 여유를 보게 해준다.

이 책은 고전번역원이 내놓은 고전 대중화 사업의 일환인 고전작품선집 시리즈 세 번째 편이다. 앞서 ‘잠(箴), 마음에 놓는 침’, ‘병중사색(病中思索)’을 출간한 바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전번역원#이규보#송서 길 떠나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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