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낙엽위 곳곳에 담배꽁초… 진화장비함엔 빗자루만 가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산불조심기간’ 서울 등산로 가보니

8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 제4등산로에서 만난 산불진화장비 보관함. 녹슨 자물쇠로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8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 제4등산로에서 만난 산불진화장비 보관함. 녹슨 자물쇠로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노원구 수락산 산림보호원 온정원 씨(64)는 매일 흡연자를 잡느라 골치가 아프다. 산에서 흡연은 불법이지만 등산로에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강원 지역 산불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화재 전문가와 함께 7, 8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울의 주요 등산로 3곳을 살펴봤다. 15일까지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이지만 담배꽁초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산불 전문가인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김동현 교수와 7일 가 본 서울 강북구 북한산 백운대 코스에서는 등산로는 물론이고 산비탈에까지 꽁초가 버려졌다. 겨울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모여 있고, 살짝 밟아도 잘게 부스러질 정도로 바싹 마른 낙엽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김 교수는 “불을 제대로 끄지 않은 채 무심코 낙엽더미에 꽁초를 던지는 건 폭탄을 던지는 꼴”이라고 말했다.

8일 찾은 서울 도봉구 도봉산 신선대 코스도 다르지 않았다. 술을 마시며 피운 듯 버린 담배꽁초 옆에 빈 막걸리 통이 널브러져 있었다. 산에서 흡연을 하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면 3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산림보호원은 “화기를 자진 반납하도록 권유하지만 압수할 수는 없어 어렵다”고 털어놨다.

산불이 났을 때 초기 진화를 위한 대비 상태도 합격점을 주기는 어려웠다. 8일 수락산 제4등산로의 ‘산불진화장비 보관함’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누구나 사용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했다. 투명 플라스틱 문 너머로 보이는 장비도 빗자루 8개와 삽 1개뿐이었다. 관리 책임도 애매하다. ‘화기보관함’이라고 적힌 표지에는 ‘노원구청’이라고 쓰여 있지만 구청 측은 “수락산(산불진화장비 보관함)은 저희 것인지, 산림청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틀간 3곳의 등산로를 6시간 넘게 걸었지만 산불감시원을 만나지는 못했다.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은 전국에 1만1000여 명이 있지만 대부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일한다. 등산객이 산행을 시작하는 새벽녘에 불이 나면 초기에 제대로 진화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불 조심 기간이 끝나는 16일부터는 아예 산불감시원이 철수한다.

김하경 whatsup@donga.com·이호재 기자
#등산로#산불#화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