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피고인들의 재판 전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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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난 모르는 일”… 김기춘 “범죄 아니다”
정호성-안종범 “시키는 대로 했다” 선처 호소

국정 농단 사건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자신이 받아야 할 죗값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 같아도 걷는 길은 제각각이다. 자백하고 선처를 받으려는 이들부터 무죄를 호소하는 사람까지, 법정에 선 국정 농단 사건 장본인들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천태만상이다.

“혐의 인정 못해” 모르쇠 전략

이번 사태의 발단인 최순실 씨(61·구속 기소)는 초지일관 ‘모르쇠’ 전략을 구사 중이다. 최 씨는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던 지난달 17일 열린 재판에서 “나는 비선 실세가 아니라 ‘허세’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르재단은 전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8·구속 기소), K스포츠재단은 고영태 씨(41·구속 기소) 사람들”이라며 “차 전 단장과 고 씨가 모든 이권사업을 주도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또 박 전 대통령을 등에 업고 삼성전자로부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명목으로 16억2800만 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동계스포츠는 아는 바가 없다”며 부인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자세다. 자신이 지시한 일은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문제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그동안 깊은 오해가 쌓였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다이빙 벨’ 상영을 막으려 한 혐의에 대해, 조 전 장관은 “잘못된 정보가 알려져, 상식에 어긋나는 여론이 형성되는 걸 막으려 한 일이며 예술 탄압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자백만이 살 길”… 잘못 인정하고 선처 호소

최 씨에게 청와대 문건 등 기밀문서를 넘겨준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쪽을 택했다.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법정 최고형이 징역 2년에 불과하다. 혐의를 인정하면 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 등 선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최 씨 일가의 주치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64·여)도 모든 죄를 인정하고 빨리 재판을 끝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최 씨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 김영재 씨(57) 부부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56)에게 소개해준 일이 없다”고 거짓 증언을 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과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38·구속 기소),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56·구속 기소)은 ‘내부 고발자’ 전략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 등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면서 “나는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법정에서 “(진실을 밝혀야 할) 역사적 책임을 느낀다.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 씨는 최 씨가 사용한 태블릿PC를 특검에 증거로 제출하는가 하면, 최 씨가 박 전 대통령과 통화할 때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번호를 제보하는 등 특급 수사 도우미 역할을 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권오혁 기자
#국정 농단 재판#최순실#김기춘#안종범#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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