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대선후보들 사드 해법 현실성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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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사드 청구서’ 파장
문재인 “한미 사드약정서 공개를”… 정부 “쟁점화할수록 부담 커져”

《 ‘트럼프 쇼크’가 5·9대선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폭탄은 비단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부담 문제를 넘어 한미동맹의 질적 변화를 예고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것인가.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한미동맹 및 사드 배치 논란의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이면합의 밝히라는 문재인

약정서 2급비밀… 美동의 없이 일방공개 못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사드 문제는 경제 문제가 됐다.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만큼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문 후보 측은 사드 배치에 관한 한미 간 약정서를 공개해 이면 합의 의혹을 해소하자고 주문했다.

군 당국은 사드 비용 부담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에는 ‘미국은 미국 군대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한국은 미국에 부지·전기 등 기반시설을 제공한다’고 돼 있다. 미국이 비용 부담을 요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가 비준 등을 이유로 이 문제를 가져가서 공식 논의하게 되면 자칫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새 정부에 대한 ‘기선 제압’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란 지적을 제기한다.

장광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 내 여론 달래기용’이라고 이미 말했는데 국회가 다시 쟁점화할 필요가 있느냐”며 “국회에서 논의하면 미국이 SOFA 규정에도 없는 비용 부담을 더 강하게 요구할 구실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간 약정서 공개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3월 사드 배치 문제를 공식적으로 협의하는 공동실무단을 출범시키며 만든 약정서를 2급 비밀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동의가 없는 한 일방적으로 공개할 수 없는 것.

한국 정부가 트럼프 요구에 반박하기 위한 카드로 약정서를 공개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한미 간 약정서는 문구 하나하나를 당시 백악관의 최종 승인을 받아 작성된 것”이라며 “미국도 ‘사드 청구서’를 보낼 근거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한국이 감정적으로 약정서를 공개했다가는 미국이 공격할 빌미만 제공하고, 향후 대미 협상력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 셰일가스 수입하자는 홍준표

트럼프 요구 수용 전제… 담판용 카드론 미흡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을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청구서’에 대항할 카드로 내놨다. 중동에서 수입하는 가스 중 일부를 미국 수입으로 대체해 사드 비용 분담 문제를 상쇄한다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비용 부담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 협상 전략이다. 그러나 ‘셰일가스 카드’는 정부가 올해 1월 이미 쓴 카드다.

정부는 1월 미국산 셰일가스를 비롯해 대미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하반기(7∼12월)부터 20년간 연간 280만 t의 셰일가스를 미국에서 수입할 계획이다. 2019년부터는 민간기업인 SK E&S와 GS에너지도 각각 220만 t, 60만 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매년 들여올 예정이다.

정부는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으로 줄어드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2019년 기준 약 2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무역 적자가 일부 해소되는 셈이지만 에너지 수입의 특성을 감안하면 사드 비용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담판용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에너지 수입의 5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산 셰일가스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에너지는 장기 계약이기 때문에 가격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럴바엔 사자는 유승민

문제는 가격… UAE 2조, 카타르는 7조원 들어


현재까지 사드 구매를 결정한 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로 파악된다. UAE는 2011년 말 미 정부와 사드 2개 포대의 구매 계약을 대외군사판매방식(FMS)으로 체결하고, 장비 인도 절차를 밟고 있다. 카타르도 2개 포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전력화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 사드 도입(구매)을 추진하면 미국은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은 2015년 3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장거리미사일을 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적대국들이 있는 한국과 중동은 사드를 시급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가격이다. UAE는 발사대 10여 대와 탐지레이더(AN/TPY-2) 2대, 요격미사일 100여 기 구입에 19억6000만 달러(약 2조2300억 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는 2개 포대에 레이더 1대와 요격미사일 50여 기, 후속 군수 지원을 추가해 도입 가격이 65억 달러(약 7조4000억 원)로 치솟았다고 한다.

● 국회비준 필요하다는 안철수

조약 아닌 ‘이행행위’… 비준 대상인지 불분명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 비용 요구 발언 직후 “우리가 부담할 일 없다. 원래 체결된 합의대로 갈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미 당국이 이미 합의한 만큼 재협상은 없다는 취지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사드 비용을 문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음에도 현실 인식이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재차 사드 비용 문제를 언급하자 안 후보 측도 태도를 바꿨다. 안 후보 측 김근식 정책대변인은 “1조 원 이상을 (사드 비용으로) 공식적으로 달라고 하고,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면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미 간 합의를 파기함에 따라 새로운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냥 넘어갈 순 없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미 측이 사드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설령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관련 규정을 개정하더라도 소급 적용될 수 없다.

미 측 요구를 한국 정부가 수용한다고 해도 이것이 국회 비준 대상인지도 분명치 않다. 헌법 60조 1항에는 국회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한해 동의권을 가진다고 돼 있다. 미 측의 사드 배치는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한 ‘이행 행위’이지 조약이 아니어서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라는 게 외교안보 당국의 의견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동맹국에 무기를 배치하고 나서 비용을 받아간 전례가 없다”며 “우리가 국회 비준 얘기를 먼저 꺼내기보다는 차분히 지켜보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도로 가져가라는 심상정

돈 문제로 배치 번복땐 동맹 단절까지 각오해야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미국이 사드 비용 분담을 고집할 경우 “돈 못 내겠으니 사드 가져가라고 해야 당당한 대한민국”이라는 과격한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적 이해만 따져 사드 배치를 번복할 경우 외교 안보적으로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한 핵위협을 억지할 한미동맹의 상징인 사드 배치를 ‘돈 문제’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사드 외 다른 대안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용에 관한 이견 때문에 한미 양국이 결정한 북한 핵·미사일 대응 조치가 번복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안보적 자충수라는 지적도 있다.

또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드 철수는 중국의 대북 압박을 유도할 주요한 협상카드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로 한미동맹의 핵심 합의가 번복되는 걸 확인한 중국이 경제적 보복을 대한(對韓) 군사 압력의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실장은 “사드 배치 번복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동맹관계 단절까지도 각오해야 할 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은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고 관련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문병기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신나리 기자·세종=박민우 minwoo@donga.com·황인찬 기자
#사드#해법#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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