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의 오늘과 내일]7월 함부르크서 보고 싶은 찌푸린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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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롯데그룹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용지를 제공하면서 시작된 중국의 억지 보복이 두 달째다. 국내 기업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피해를 감수하고도 어디 한 곳 하소연할 데 없는 롯데뿐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중국 판매량은 반 토막이 났다. 식음료 제과 등 중견 유통업체들은 중국 당국을 자극할까 봐 피해 상황을 말도 못 하고 있다.

다행히 사드 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 중국 압박에 파묻혀 북핵 문제의 종속 변수화하고 있는 것이다. 유례없는 미중의 협공 속에 중국과 북한 관영매체가 치고받는 장면까지 펼쳐지고 있다. 분위기 파악차 전화를 돌려보니 정책 당국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국이 사드 보복의 강도를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중국의 국내외 사정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정 기업을 향해 국제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억지 보복을 지속하는 것은 주요 2개국(G2) 리더로 부상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대국답지 않은 ‘쩨쩨한 리더십’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서방 언론은 일제히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1월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한 시 주석의 이중적 행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경제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 15%에 이르는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하는 국영기업 부채, 매년 치솟는 도산 기업 수, 흔들리는 위안화 가치 등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제적으로 밀접한 한국과 척질 상황이 아니다. 물론 한국으로서도 경제도 경제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축인 중국과의 대화 복원은 필수적이다.

양국은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사드 배치는 기정사실화하되 시 주석의 체면을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골든타임은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다. 한국의 새 대통령과 시 주석이 어떤 형태로든 만나는 무대다. 시 주석은 불쾌한 표정을 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관계 회복의 신호탄이다. 시 주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마지못해 한국의 새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중국 인민에게 연출하면 체면은 회복되는 것이다.

2년 반 전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도 그랬다. 접견실에서 먼저 기다리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소를 띤 채 악수를 청했지만 시 주석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도쿄에서 만난 일본 외교 당국자들에게 ‘굴욕 외교’ 아니냐고 꼬집자 “이제부터 좋아질 일만 남았다”며 웃었다. 중국식 관계 복원법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예상대로 불과 5개월 후 반둥 회의에서 만난 양국 정상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교환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일본을 포용하는 것은 중국의 평화굴기 과정 중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돌변했다. 5개월 전 만남을 폄훼했던 한국 외교당국과 언론만 뒤통수를 맞았다. 우리도 이제 국제관계를 냉철하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함부르크로 가기 전 사전 정지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5월 말경 경제단체를 필두로 대규모 민간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기업들의 중국 ‘몰빵’도 개선해야겠지만 어르고 달래는 강온 양면 작전을 구사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야 한다. 미우나 고우나 반만 년 이웃인 중국과 공존하는 길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롯데그룹#중국 사드보복#사드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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