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철도공사 짬짜미 수주… 대형건설사 4개사에 700억 과징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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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 회사가 낮은 가격 써내 경쟁업체 탈락시키는 신종수법
4社가 따낸 공사비만 5900억… “입찰가 중심 발주 관행 바꿔야”

원주∼강릉 철도 공사에서 담합해 입찰한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 4곳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700억 원의 철퇴를 맞았다. 이들은 들러리 회사를 내세워 일부러 높은 가격을 써내게 하는 일반적인 담합과 달리, 오히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낙찰 기준에서 탈락하게끔 하는 신종 수법을 썼다.

공정위는 2013년 1월 발주된 원주∼강릉 철도 노반공사에 짬짜미 입찰한 현대건설, 한진중공업, 두산중공업, KCC건설에 총 701억9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현대건설이 약 217억 원으로 가장 큰 금액을 물고 한진중공업이 16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는 2014년 적발된 호남고속철도 담합 사건(4355억 원) 이후 철도공사 담합으로는 최대 규모 과징금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입찰 전날 낙찰예정사와 들러리 회사를 공구별로 정해놓고 4개 공구에 입찰했다. 들러리 회사들은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업체들이 써낸 가격의 70%에 불과한 낮은 가격을 적어 냈다. 이후 낙찰예정사가 이보다 조금 높은 가격을 써내는 방식으로 공사를 따냈다. 낙찰자를 최종 선정할 때 평균 입찰액보다 지나치게 낮은 금액을 써낸 회사들을 탈락시키는 발주 방식을 악용한 것이다.

평소 친분이 있던 각 회사의 업무 담당자들은 입찰 전부터 관련 서류 등을 함께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 전날과 당일에만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주고받기를 35번이나 하며 의견을 교환했다. 육성권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장은 “건설사들은 약속을 깨는 ‘배신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입찰 당일 함께 서류를 제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4개 회사가 수주한 총공사비만 약 5900억 원에 이른다. 사업 규모가 컸던 데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교통 인프라를 조성하는 중요한 공사여서 과징금도 비교적 무겁게 매겨졌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입찰 금액이 낙찰 여부를 좌우하는 발주 방식을 바꿔야 뿌리 깊은 담합 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주요 국책사업 공사에서는 건설 기술 수준 등과 상관없이 입찰 가격만 낮으면 시공사로 선정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채택해 왔는데, 이 방식이 짬짜미에 취약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300억 원 이상 규모의 공공공사에 기술평가를 반영하는 ‘종합심사낙찰제’를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공 실적이 많은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기술점수에서 만점을 맞아 종심제에서도 입찰가만으로 낙찰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공사 실적 외에 회사별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공기업 등 발주처들의 의견이다.

세종=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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