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에르도안, 입법-사법부까지 손아귀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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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딥포커스]개헌 관철시킨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3)이 개헌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면서 2029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번 국민투표 가결을 통해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94년 동안 유지돼 온 의원내각제가 폐지되고 막강한 대통령제가 도입되면서 에르도안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까지 아우르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다. 오스만 제국의 최고지도자 술탄이 21세기에 부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새 헌법에 따른 권력 구조는 2019년 11월 동시에 치러지는 대선과 총선 이후 발효될 예정이다.

16일 치러진 개헌 국민투표에서 찬성 51.2%, 반대 48.8%로 찬성 쪽이 2.4%포인트(약 112만 표) 더 많았다. 에르도안은 이날 밤 국민투표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반면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최소 250만 표가 선거관리위원회 직인이 찍혀 있지 않았다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장기 집권을 꿈꾸고 있는 에르도안은 새 헌법이 발효되면 현행 헌법은 허용하고 있지 않은 집권여당 정의개발당(AKP) 당수로 복귀하고, 국회 해산권도 갖게 돼 입법부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또 헌법재판관 15명 중 12명에 대한 임명권을 통해 사법부에도 강력한 입김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에르도안이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 데는 경제적 성과 덕이 크다. 2003년 총리에 오른 이후 터키 경제는 2004년 5.3%, 2005년 9.4%, 2006년 6.9%, 2007년 4.7% 성장했다.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는 성장률이 ―4.83%로 주춤했지만 2010년 9.2%, 2011년 8.8%로 다시 경제를 도약시키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도로 철도 항만 다리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 붐을 일으키고 관광산업을 적극 유치한 게 주효했다.

그가 총리 4연임을 금지한 정의개발당 당헌에 막혀 2014년 대통령으로 우회 출마했을 때도 51.8%를 득표하며 술탄 탄생의 징조를 보였다. 지난해 7월 실패로 끝난 군부 쿠데타는 그가 대통령 출마 당시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제 개헌을 현실화하기 위한 발판이 됐다. 쿠데타 불발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만 명을 체포하면서 공안정국을 만들었다. 터키를 겨냥한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의 테러가 이어지면서 안정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에르도안은 안보 위협으로부터 안정된 국가를 모토로 국민투표에서 승리했지만 극단적 양극화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부 내륙도시에선 70%가 넘는 찬성 몰표가 쏟아진 반면 최대 도시 이스탄불(찬성 48.6%), 수도 앙카라(48.9%), 3대 도시 이즈미르(31.2%)에서는 모두 반대표가 앞섰다.

유럽연합(EU) 가입과 난민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온 유럽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에르도안은 16일 밤 승리 선언 연설에서 “사형제 부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가 가입 선결 조건으로 요구해 터키가 폐지했던 사형제를 부활시킨다면 지난해 터키와 EU가 체결한 난민송환협정도 위태롭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에르도안#터키#대통령#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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