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마다 요리사 얼굴이 가득한 시대. 최근 신간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불광출판사)를 낸 박찬일 씨(52)는 이런 시류를 거스르는 스타 요리사다. TV에 거의 출연하지 않지만 그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와 종로구의 양식당, 지난달 새로 연 광화문 국밥집 앞에는 늘 긴 줄이 선다.
“말을 까칠하게 하니까 TV에서 안 부르는 듯하다”는 박 씨는 기자 출신 요리사다. 8년간 한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33세 때 이탈리아로 떠나 요리를 배웠다. 인터뷰 내내 그는 말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철저히 구분했다. 불친절한 듯하지만 어정쩡함 없는 담백함을 품은 그의 요리와 닮은 말투였다.
“여러 계기로 사찰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커 가던 터에 월간지 ‘불광’에서 사찰음식 기획을 제안해 식재료 기행을 시작했다. ‘고기와 조미료를 쓰지 않는데도 절밥은 왜 맛있을까?’ 책 제목 그대로의 호기심이었다. 3년간 각 사찰 주방담당 스님 열세 분과 함께 그분들이 사용하는 재료 산지를 찾아갔다.”
계절별로 4개 장(章)을 나눠 그 시기 제철 재료를 소개했다. 봄에는 지리산 금수암 대안 스님과 함께 충남 서산 밭이랑에 앉아 갓 캔 냉이를 장작불에 전 부쳐 먹었다. 여름에는 경기 평택 수도사 적문 스님과 함께 되직한 옥수수 장떡을 빚었다. 가을엔 경주 보광사 보명 스님의 뜨끈한 늙은호박범벅을, 겨울에는 경기 이천 마하연 우관 스님의 두부장아찌를 맛봤다.
단순명료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사찰음식 조리법을 각 장 말미에 소개했다. 솔잎가루와 물에 불린 생쌀만 먹으며 참선했다는 성철 스님에 대한 기억만 막연히 품고 있던 문외한에게는 놀랄 만큼 다채로운 메뉴다. 박 씨는 “수행자는 언제나 짠지 하나 나물 하나만 먹어야 한다는 건 폭력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스님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 과식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만 절식 습관은 음식에 대한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든다.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한 종교적 사유 중 하나다. 우리는 왜 태어났으며 왜 삶을 영위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음식으로 생을 지탱한다. 식욕에 대한 고민과 대응은 종교적 수행의 한 형태다.”
소개한 음식들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해 보이는 건 현재 이 땅의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 매일 먹던 음식이 옛 맛을 지키며 남아 있도록 해준 데서 특히 사찰음식의 가치가 빛난다는 것이 박 씨의 생각이다.
“스님들 음식의 각별함은 ‘재료에 대한 집중력’에 있다. 쓸 수 있는 재료는 뭐든 먹음직하게 조리해 상에 올리려는 의지. 요즘 요리사들은 구하기 쉽고 맛 내기 용이한 재료의 한계를 정해 놓는다. 절밥 짓는 스님들에게는 그런 한계가 없다. 없는 형편에 산과 들에서 따온 것을 어떻게든 먹음직하게 해 먹이려 애쓰던, 우리 옛 어머니들의 밥상이 사찰음식에 있었다.”
봄철 사찰음식으로 그는 말린 냉이 차를 권했다. “몸에 도움이 되는, 몸을 낫게 하는, 당연하지만 잊고 있는 우리 음식의 가치를 품은 재료”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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