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방형남]4·19 과정을 세계기록유산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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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국립4·19민주묘지 소장
방형남 국립4·19민주묘지 소장
4·19혁명 57주년을 앞둔 요즘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 ‘민주영웅의 거리’에는 초등학생 5명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가로기가 펄럭이고 있다. 4·19혁명 당시 희생된 초등학생들이다. 열 살 안병채(동산국교)와 임동성(중앙국교), 열두 살 전한승(수송국교), 열세 살 강석원(전주국교), 열네 살 전태성(금호국교)은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 와중에 목숨을 잃었다. 진달래 철쭉 등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은 “초등학생까지 시위에 나섰다 희생됐네”라며 옷깃을 여민다.

57년이 흘렀지만 4·19혁명은 살아있는 역사다. 혁명의 주역인 민주열사 가운데 500명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 민주묘지에선 거의 매주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열사들의 영결식이 거행된다. 이들 중 많은 분이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숭고한 삶을 사신 분들이다.

100만 명이 넘는 국립4·19민주묘지 연간 내방객의 절반 이상이 어린 학생들이다. 민주열사 묘역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념관의 전시물을 보며 민주주의에 눈을 뜨는 학생들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하다. 이곳이야말로 4·19정신의 계승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자, 4·19혁명이 뿌린 민주주의 DNA가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것을 절감하는 자리다. 세계에 감동을 준 촛불혁명의 뿌리를 4·19 말고 어디에서 찾겠는가.

4·19는 혁명세력이 새로운 정권의 주도층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기존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심에서 시민들이 나선 게 아니다. 그런 뜻을 살려 4·19혁명을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혁명과 함께 세계 4대 혁명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서명운동이 관련 단체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4·19혁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운동도 시작됐다.

정부 고위층과 각계 주요 인사들도 국립4·19민주묘지를 종종 찾는다. 그러나 정치의 주역인 국회의원들의 발길은 드문 편이다. 올해 4·19가 많은 의원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져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민주열사들과 함께 기원한다.

방형남 국립4·19민주묘지 소장
#4·19혁명#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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