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신분증 검사 안하고 갑판에선 술판… 갈길 먼 ‘안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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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여객선 직접 타보니

너울성 파도때 갑판 올라가고… 안전 안내방송엔 무관심하고… ‘항해중 금지’ 엘리베이터 타고 15일 인천 백령도로 가는 여객선 상층부 갑판 위에 승객들이 몰려 있다. 이곳은 너울성 파도가 칠 때는 추락 위험 때문에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맨위쪽 사진). 다음 날 전남 목포를 출발해 제주로 가는 대형 여객선 내부 모니터에 대피 요령 등이 방송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가운데). ‘항해 중 작동금지’ 푯말이 걸린 엘리베이터도 아무런 제지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맨아래쪽 사진). 백령도=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 목포=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너울성 파도때 갑판 올라가고… 안전 안내방송엔 무관심하고… ‘항해중 금지’ 엘리베이터 타고 15일 인천 백령도로 가는 여객선 상층부 갑판 위에 승객들이 몰려 있다. 이곳은 너울성 파도가 칠 때는 추락 위험 때문에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맨위쪽 사진). 다음 날 전남 목포를 출발해 제주로 가는 대형 여객선 내부 모니터에 대피 요령 등이 방송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승객은 많지 않았다(가운데). ‘항해 중 작동금지’ 푯말이 걸린 엘리베이터도 아무런 제지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맨아래쪽 사진). 백령도=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 목포=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토요일인 15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여객터미널. 출항 준비 중인 한 여객선 선실 안 TV에 안전수칙을 설명하는 안내방송이 한창이었다. 백령도로 가는 이 여객선에는 약 400명이 승선했다. 그러나 TV를 지켜보는 승객을 찾기는 힘들었다. 대부분 일행과 이야기하거나 의자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는 승객도 있었다. TV에서는 ‘갑판 난간에 기대지 말라’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리 없이 자막을 곁들인 화면만 나오는 탓에 승객들의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세월호 참사 3년이 흘렀다. 국민안전처가 신설되고 각종 안전관리 규정이 마련됐다. 특히 여객선 운항 규정은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일부 항로의 여객선 운항 실태를 확인한 결과 규정만 바뀌었을 뿐 ‘안전의 생활화’까지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 여전히 바다 위 떠도는 ‘안전 불감증’

동아일보 취재진은 이날 백령도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매표소에서 안내받은 대로 신분증과 승선권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나 정작 승선 때 별도의 검사는 없었다. 배가 떠난 뒤에도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승선 전 탑승객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한 40대 남성 승객에게 구명조끼 위치를 물었다. 이 남성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저기 있네”라며 15m가량 떨어진 비상용 구명조끼함을 가리켰다. 여객선 좌석 아래에도 1인당 한 개씩 구명조끼를 비치하고 있지만 남성은 이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착용법도 몰랐다. 남성 승객은 “안 알려주는데 내가 어떻게 아느냐”며 말을 흐렸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여객선이 출발하고 1시간가량 지난 무렵부터 너울성 파도로 배가 출렁거렸다. 승무원들은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승객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승객들은 “화장실을 가야 한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수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 승객은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추락 위험이 있는 갑판 상층부로 올라가기도 했다. 한 승무원은 “안전수칙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깐깐하게 군다고 항의하는 승객도 있다”며 “승객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갑판 위에서는 양주까지 동원된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한 승객이 “뱃멀미가 심해 술을 마셔야 한다”고 변명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승무원도 “또 드시면 압수할 거예요”라며 넘어갔다. 만취 상태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릴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선내에서는 음주가 금지돼 있다.

16일 오후 1시 전남 목포시 목포항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제주행 대형 여객선. 이번에도 승선 때 승객 확인 절차가 따로 없었다. 출입이 제한돼야 하는 화물칸으로의 이동이나 운항 중 작동을 멈춰야 할 승강기 탑승도 자유로웠다. 출입제한구역 표기도 없었다.

여객선에는 곳곳에 비상용 구명조끼가 비치돼 있다. 위급상황 때 어디서든 손쉽게 꺼내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명조끼에 달린 구조용 전등은 작동되지 않는 것이 많았고 일부는 배터리가 없었다. 선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를 대비해 시설물을 고정해야 하지만 복도 등에 설치된 높이 90cm 정도의 대형 쓰레기통 일부는 고정돼 있지 않아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흔들렸다.

○ 규정 강화보다 생활화가 중요

일부 긍정적인 변화도 눈에 띄었다. 여객선마다 화물 과적 단속이 크게 강화된 것이다. 백령도행 여객선의 경우 개인화물을 15kg으로 제한하고 있고 차량 선적도 60.52t을 넘을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그보다 규모가 큰 제주행 여객선은 1t 이상 모든 화물차량을 실을 때 반드시 증명서를 발급받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선내 화재에 대비한 소방시설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다. 객실 내 소화기뿐만 아니라 비상탈출용 망치와 손전등도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매달 20일 점검도 이뤄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규정 강화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규정이 몸에 배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구원 교수는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규정 강화가 선행된 만큼 실천이 뒤따라야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김동혁 hack@donga.com / 목포=신규진 / 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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