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허버드]한국 민주주의의 저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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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은 그를 용감한 지도자로 주목했던 사람들에겐 지켜보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동맹 관계인 미국에서, 특히 한국 정치 상황에 주목하고 있는 워싱턴에 있는 나로서는 더 그렇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부패 스캔들은 한국에서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전 세계 언론의 관심사였다. 탄핵 논의 와중에 대한민국의 시작부터 있었던 정부와 대기업 간 유착 관계라는, 달갑지 않은 부분이 다시 조명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법기관들은 박 전 대통령의 부패 혐의를 혹독한 눈으로 조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비극적인 피날레 못지않게 한국의 탄핵 사태에 대해 더 널리 알려져야 할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로 민주주의가 한국에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결국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본인과 그 측근들을 겨냥한 부패 스캔들과 국정을 일부 민간인들이 뒤흔들었다는 의혹이 지난해 말부터 극적으로 제기되면서 이뤄졌다. 대규모였지만 놀랍도록 평화로웠던 시위대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하면서 탄핵이 가능했다.

어느 민주국가에서나 탄핵은 어려운 과정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탄핵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 사회적 비용을 그 사회와 정치체계가 얼마나 감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입법부와 사법부가 관여하는 헌법재판 절차가 질서정연하게 진행됐고 절반 이상의 시민들은 이를 공정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가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지속적인 국정 운영을 선보인 것은 인상적이었다. 한국 내부의 평가와 미국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금까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안정적으로 여러 도전과 과제를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게 적절하다.

사실 한국 사회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동안, 세계는 결코 멈춰 있지 않았다. 국정 컨트롤타워를 잃은 한국은 미증유의 국제적 위기에 직면했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북한은 도발을 감행했으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 전례 없는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황 권한대행과 내각의 관리 아래 제 기능을 계속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수차례 도발에도 미국이 한국과 협조하면서 대북 정책을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계획대로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됐다. 황 권한대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트럼프는 지난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뒤 회담 결과를 전화로 황 권한대행에게 알렸다. 미국의 양대 안보 축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첫 해외순방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고, 곧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취임 후 아시아 순방의 첫 행선지로 서울을 택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5월 9일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는 한국은 존경과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예정보다 7개월이나 앞당겨진 선거는 벌써부터 그 열기가 뜨겁다. 선거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제공하지만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보수정당 집권은 한미 관계의 황금기를 불러왔다. 양국 간 협조가 그만큼 가까웠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북한 문제는 같은 기간 동안 오히려 더 풀기가 어려워졌고 한국과 미국은 점점 더 커지는 북한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된 협력 의지가 필요해졌다.

누가 선거에서 이길지 감히 예측하지는 않겠다. 주한 미국대사로서 보수와 진보 정권을 모두 상대해 본 입장에서 볼 때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함께 갈 의지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박근혜#탄핵 심판#대통령 선거#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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