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이한일]작년엔 블루베리, 올해는 블랙커런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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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블랙커런트 80그루를 심었다. 작년에 3, 4년생 베리류를 심었더니 여름내 탐스러운 열매들이 열려 생과로, 음료수로 맛있게 먹었고 몇몇 친지, 친구들과 즐겼던 기쁨을 좀 더 나누고 싶었다. 서울은 이미 개나리가 활짝 피고 목련이 만개했지만 우리 집 목련은 이제 봉오리가 올라오고 있다.

4월 초순이지만 이곳 강원 홍천군 내촌면은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영하 5도까지 내려갔었다. 지난주에는 굵은 소금만 한 우박이 두 차례나 쏟아졌지만 오늘 낮 기온은 18도까지 올랐다. 여기는 일교차가 상당하다. 1년을 지내보니 일교차가 15도 이상으로 큰 것 같다. 그래서 특히 과일들이 맛있나 보다.

얼마 전 이곳 토박이인 김 사장댁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내촌천 민물고기 매운탕을 안주 삼아 네 집이 어울려 술잔을 나누었다. 우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내촌천은 홍천강 상류지류로 다슬기가 많이 서식할 정도로 물이 맑다. 모래와 자갈이 많아 쏘가리, 빠가사리, 꺽지, 돌고기, 모래무지, 붕어 등 물고기도 많이 서식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슬기를 잡고 물놀이를 즐기려는 가족 일행과 낚시꾼들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강에 나가지 않는다. 농사일이 바빠 다슬기 잡을 시간이 없다. 농한기인 겨울철에만 한두 번 매운탕을 끓인다. 예전 강물이 꽁꽁 언 1월경에는 마을 주민 여럿이 어울려 얼음판을 두들겨 겨울잠을 자던 큰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마을 큰 잔치를 벌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쉽다.

저녁 초대 때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 중 유독 가슴에 깊이 들어온 한마디가 있다. “이 선생 올해엔 무얼 심어야 해요?” 귀촌 초보인 나를 향해 자조적인 말투로 묻는다. 지금도 가슴 아프다. 귀촌인들이야 연금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래도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다.

나도 2000여 평에 이것저것 심지만 그저 내가 먹고 친지, 친구들과 나눠 먹으면 된다. 콩이 안 달려도 그런가 보다 하고, 가격에는 아직 관심이 없다. 그러나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지어 그 수입으로 생활해야 한다. 농산물 특성상 해마다 품목별 가격이 요동친다. 재작년엔 곤드레 나물 가격이 괜찮았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너도나도 곤드레를 심었고 결국은 걱정했던 대로 가격이 폭락했다.

농사 수익이 한 해 수억 원씩 되는 농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몇 퍼센트일 뿐이고 그 대부분도 젊은 농민이다. 나는 얼마 전 60세를 넘겼지만 마을에선 청년이다. 우리 마을도 평균 연령이 65세는 훨씬 넘을 것이다. 우리 농업이 소작농, 가족농으로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어찌 됐든 농업은 우리 사회의 기본이다. 가끔 밭을 갈아엎고도 허허 웃으며 다시 삽을 잡는 마을 주민이 나는 참 좋다.

―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블랙커런트#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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