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토크쇼]깊고 잔잔한 詩에서 분출하는 활화산 같은 노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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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호승과 가수 안치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카페에서 만난 시인 정호승(왼쪽)과 가수 안치환. 안치환은 “노래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시의 영역이 있다”고, 정호승은 “스스로 시에서 발견하지 못한 숨은 의미를 노래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카페에서 만난 시인 정호승(왼쪽)과 가수 안치환. 안치환은 “노래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시의 영역이 있다”고, 정호승은 “스스로 시에서 발견하지 못한 숨은 의미를 노래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가수 안치환(52)은 시(詩)를 노래로 부르기를 즐긴다. 신동엽 김남주 나희덕 도종환 정호승 황지우의 시에 선율을 붙여 불렀다. 시인 정호승(67)의 작품은 가수들이 탐하는 운문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별 노래’ ‘수선화에게’ 등 60편 넘는 그의 시가 김광석 안치환 양희은 이동원 등의 목청으로 불렸다.

정호승과 안치환을 한자리로 불러내기엔 지금이 적기였다. 둘이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 콘서트 시리즈를 해온 게 올해로 10년째다. 밥 딜런이 1일 스웨덴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아 들었다. 시와 노래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안치환은 까칠한 진보주의자, 정호승은 따뜻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한다. 두 예술가가 본 요즘 시국은 어떤 풍경일까. 한 테이블 앞에 두 사람을 앉혔다.

짝짜꿍의 시작
 
“처음 뵌 건 젊은 출판인과 문인들이 모여 설악산 자락에서 연 모임에서였어요.”(안치환·이하 안) “내가 치환 씨를 본 건 그 전이에요. 후배 시인이 결혼하는데 치환 씨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시)를 축가로 불렀는데 신부가 그렇게 울더라고.”(정호승·이하 정)

시노래 모임 ‘나팔꽃’에 2003년 정 시인이 참여하면서 둘의 교류는 본격화됐다. 2008년 안치환이 9.5집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지금껏 전국을 돌며 동명의 콘서트를 해왔다. “제 노래들 중간에 정 선생이 무대에 올라 시낭송을 하면 제가 대금 연주로 배경음악을 깝니다. 하하.”

밥 딜런과 블랙리스트
 
대중음악계는 환호했고 문단 일각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노벨 문학상 이야기다.

―딜런의 수상을 어떻게 보는지….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살리려는 이벤트 아니었을까요. 부럽기도 했어요.”(안)

“1970년대 김민기의 노랫말 중 참 좋은 게 많죠. 그런데 김민기에게 우리가 ‘한국문학상’을 준다면 어떨까요. 가사는 엄연히 멜로디를 위한 글이죠.”(정)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의외로 정호승은 있었고 안치환은 없었다.

―초기부터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불러 온 안치환 씨, 이건 ‘굴욕’ 아닌가요.


“(정) 선생님은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올랐을 거예요. 저는 왜 없는지. 류형선 작곡가는 고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에 참여해 올랐다는데, 그 앨범 심지어 저희 회사에서 나왔거든요.”(안)

옆에 앉은 그의 소속사 숨엔터테인먼트의 유수훈 대표가 부연한다. “치환 씨는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한 적이 없어서일 거예요.” “제가 치환 씨 앞길을 막은 건 아닌지, 미안해지네요. 하하.”(정)
 

  
까칠한 질문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이자 ‘광야에서’부터 ‘철의 노동자’까지 민중가수로 잘 알려진 안치환은 1993년 ‘소금인형’, 1995년 ‘내가 만일’, 1998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히트하며 어느새 KBS TV ‘열린음악회’와 친해졌다.

―왜 변했나요.

“변한 적 없어요. 1980년대엔 격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직한 삶이었죠. 당시 제 노랜 오히려 ‘너무 말랑하고 서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걸요. 1990년대에 사회가 변하면서 원래 갖고 있던 서정성이 더 드러나 보인 것뿐이죠. ‘내가 만일’로 알려진 4집만 해도 ‘너를 사랑한 이유’ ‘수풀을 헤치며’를 보세요.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는 비껴가지 않았어요.”(안)

혼란한 요즘 시국은 두 예술가의 심장을 다시 달군 듯했다. 지난해 11월 안치환은 날 선 싱글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냈고, 정호승은 2월 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 세월호 관련 시 두 편을 실었다.

“‘평형수’와 동아일보에 기고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예요. 그 참사는 물신 숭상, 자본주의의 가장 썩은 부분이 결국 어떤 희생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줬죠. 절망조차 밑거름으로 삼아 진정한 희망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의 범위 안에서 하고자 했어요.”(정)

―대권 주자로는 누굴 지지하나요. 안치환 씨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대학 동기죠? 정 시인은 최근 문재인 후보 지지자 명단에 오른 것 같던데….

“세 분 중 한 분이겠죠. 남경필 씨는 과 친구예요. 이 사람이 꼭 필요할 때만 저를…. 하하.”(안)

“제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입장이 아니에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정)
 
인터뷰 후기
 
지난해 11월 이후 한숨 고른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 공연은 6월 재개된다. 2014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안치환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선생님, 요즘도 턱걸이 열두 번씩 하세요? 저도 그 얘기 듣고 요즘 열두 번씩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안) “요즘은 좀 쉬었더니 근육이 다 빠져서…. 그래도 7, 8회는 하죠.”(정)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은 안치환의 노래, 깊지만 잔잔한 바다 같은 정호승의 서정시. 둘의 만남은 의외로 합(合)이 맞는다. 서로 치고 빠지며 주고받는 환담마저 가식 없이 매끄러웠다.

“학창 시절 ‘음악 운동’ 할 때, 음악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로 매일 싸웠어요. 제 일관된 믿음은 음악이 좋아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안) “서정이란 어려운 게 아니지. 날씨가 따뜻하다고 해도 꽃이 안 피면 봄이 오지 않은 거죠, 꽃이 안 피면….”(정) “시대를 얘기하시네요.”(안)
 
임희윤 imi@donga.com·조종엽 기자
 

#시인 정호승#가수 안치환#숨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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