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드나드는 ‘유언비어 터미널’…업체는 감시 손놓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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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판치는 오픈채팅방]대선 겨냥 갈등조장 위험수위
일반인 자살이 ‘정치적 투신’ 둔갑… 경선 부정 의혹 여과없이 확산
한탕 노린 ‘정치테마주’ 홍보도

‘쓰고 빠지는’ 익명채팅 추적 힘들어
檢, 가짜뉴스 엄정 대처 밝혔지만 카카오톡 “사적 영역” 신고만 접수
실시간 모니터링 민관협조 절실

그래픽 서장원 기자
그래픽 서장원 기자
“박영수 특검 사무실 15층에서 애국동지님이 투신하셨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지난달 30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라온 글이다. 채팅방의 이름은 ‘탄핵무효(김진태대통령)’. 이 글이 올라오자 대화창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특검을 규탄하는 대화가 수십 분간 이어졌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던 날이다. 글에는 한 60대 남성이 특검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온라인 기사가 링크돼 있었다. 이와 비슷한 글은 잠시 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의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투신자는 주식 투자에 실패해 신변을 비관한 일반인이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가짜 뉴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최근에는 익명의 사람들이 다수 참여하는 오픈 채팅방이 가짜 뉴스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요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검색창에 ‘대선’ ‘선거’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채팅방은 약 200개. 실시간 참가 인원이 바뀌는 오픈 채팅방 중에는 많으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대화를 나눈다.

○ 진영 가리지 않는 가짜 뉴스 퍼레이드


본보 취재팀은 최근 1주일 대선 관련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10곳을 모니터했다. 그 결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각종 가짜 뉴스가 포착됐다. 이른바 ‘카더라 통신(유언비어)’도 수두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픈 채팅방 안에선 팩트 진위를 둔 논란까지 벌어진다. 3일 ‘촛불과 함께하는 이재명’이라는 오픈 채팅방에선 지난달 25일 호남권 경선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 부정 의혹이 제기됐다. “개표 후 ARS 자료를 파기한다고 한다. 본인 표가 유효표인지 확인조차 못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라는 내용의 한 게시글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자 곧 “이재명 캠프 공식 대표 밴드에서 캡처한 글”이라며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ARS 투표 결과 로그 데이터는 6개월간 보존된다. 누구도 임의로 폐기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는 반박글이 올라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했던 참가자들은 몇 초 만에 “다행이다”라며 기뻐했다.

이처럼 팩트가 곧바로 바로잡히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3일 ‘♡보수의 방♡’이라는 오픈 채팅방에는 “세월호 학생들이 순국선열 애국자로 ‘대전현충원’에 묻혔다고 합니다. 여행 가다 죽은 아이들이 순국열사입니까?”라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대화 참가자들 누구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해양수산부 소속 오행록 세월호현장수습본부 언론지원반장은 “세월호 희생자분들은 경기 안산 하늘공원, 평택 서호추모공원, 화성 등지에 안치되어 계신다”며 “희생자 중 군인도 없었던 걸로 안다”고 전했다.

○ 대선 테마주 오픈 채팅방도 난립

검증 안 된 정보는 주식 관련 오픈 채팅방에도 활개를 친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지자 대선 테마주 채팅방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문재인 전 대표가 확정되자 ‘좋은세상’이라는 채팅방에서는 “문재인의 친한 후배가 회사 임원이라 함. DSR제강 ㄱㄱ. 지금 가야 수익”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DSR제강은 홍하종 대표이사가 문재인 전 대표와 같은 경남고 출신임이 알려져 문재인 테마주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DSR제강은 지난달 13일 공시에서 문 전 대표와의 사업적 연관성을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은 요동쳤다.

국민의당 대선 후보인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안랩에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도 줄을 이었다. 씨씨에스는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 지역에서 케이블TV를 운영 중이라는 이유로 테마주가 됐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선테마주, 정치테마주는 굉장히 가변적이고 의미가 없으며 특히 오픈 채팅방을 통해 유통되는 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라며 “이런 주식에는 절대 투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 가짜 뉴스 확산 막나, 못 막나

가짜 뉴스가 오픈 채팅방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건 접근이 쉽고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치매설’을 유포한 사람은 블로그에 글을 올렸기에 추적이 용이했지만 오픈 채팅방에 올렸다면 특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5일 가짜 뉴스 유포자를 집중 단속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에서도 오픈 채팅방 이용자가 가짜 뉴스 유포자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참여자가 실시간 바뀌는 익명의 공간이라 유포자 색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사적인 대화 영역인 만큼 자율적인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팩트 검증 기간이 짧기 때문에 가짜 뉴스 단속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카카오톡은 원래부터 친한 사람들이 대화하는 공간이라 익명 채팅방에 들어가도 이미 친밀한 사람과 대화하는 공간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가짜 뉴스를 더 믿기 쉽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이미지를 보고 뽑는 여론전이 될 수 있는 만큼 가짜 뉴스가 해당 후보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며 “회사 측이 실시간 감시하지 않는 한 규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연 lima@donga.com·황성호·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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