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지지율 1위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4월 3일 1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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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어떤 공약보다 확실하게 표심의 향방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이 탄핵 국면에 돌입한 후 지지율 1위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부인 김정숙 씨. 연애 시절부터 함께한 40여 년 세월을 이 부부는 무엇으로 채웠을까.

문재인·김정숙 부부 직접 만나보니


봄의 문턱을 넘어선 3월 7일 화창한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요즘 가장 바쁜 부부를 만났다.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군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문재인(64)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부인 김정숙(63) 씨다.

두 사람은 경희대학교 2년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경남 거제가 고향인 문 전 대표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뒤 한 해 재수해 1972년 경희대 법학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고, 서울 태생인 김씨는 1974년 음악대학 성악과에 입학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문 전 대표가 법대 3학년, 김씨가 음대 1학년이던 1974년 대학 축제에서다. 이후 시위 도중 최루 가스를 마시고 실신한 문 전 대표를 김씨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텄다. 문 전 대표가 대학 4학년이던 1975년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도, 석방 후 강제 징집돼 특전사에 배치됐을 때도, 1978년 제대 후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할 때도 김씨는 그를 면회하는 정성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절절한 연애를 7년간 이어간 끝에 1981년 이들은 부부가 됐다.

▼ 연애 시절 데이트 코스였다는 이화동에서 인터뷰를 하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김정숙 / 당시 친정이 이 인근에 있었어요. 만나면 주로 성균관대학교 앞 혜화동에서 놀다가 남편이 집까지 걸어서 바래다줬는데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했던 적도 있어요. 헤어지기 싫어서요(웃음).

문재인
/ 제가 집으로 바래다줄 때마다 지나던 곳이 이쪽이에요. 가장 설레던 시절의 추억이 배어 있죠.

▼ 두 분이 대학 축제에서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 어땠나요.

김정숙 / 대학교 1학년 새내기 때 법대 과대표를 하던 친구 오빠가, 학교 행사나 축제에 한 번도 안 오는 친구가 있는데 “여자 소개해주면 오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생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했으니 저더러 만나보라고 했어요. “관심 없어요”라고 했더니 그 오빠가 얼굴 이라도 보고 오라는 거예요. 프랑스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을 닮았다면서요. 처음 만나는 자리니 당연히 양복을 입고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점퍼 차림으로 오는 바람에 제가 눈을 내리깔고 그랬죠.

문재인 / 자신의 미모에 꿀리지 않았다, 그런 뜻입니까? 아내는 그때도 예뻤어요. 저도 자신 있었다, 이런 이야기예요. 하하하.

▼ 법대생과 음대생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을지 궁금해요.

김정숙 /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엄혹한 시절이어서 얘기를 하다 보면 공감대가 쉽게 형성됐어요. 시대가 잘못돼가고 있으니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있었고요.

문재인 / 같은 대학생이고 시국이 그래서 비판적인 인식이 잘 통했지요.

전남 완도군 소안도를 방문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돕는 김정숙 씨(오른쪽).
전남 완도군 소안도를 방문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돕는 김정숙 씨(오른쪽).

▼ 연애 시절 서로 어떤 매력에 끌렸습니까.

김정숙 /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진실해요. 남편은 그것을 ‘원칙을 지킨다’고 표현하는데,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어요. 저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결혼은 아버지와 달리 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과 해야지, 했는데 남편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런 면이 와 닿았어요. 함께 있으면 굉장히 편안했어요. 제 생각과 행동을 늘 존중해주고 굉장히 낭만적이었어요.

문재인 / 제가 구치소에 있을 때 아내가 면회를 와서 신문을 내밀었어요. 경남고등학교가 전국 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었어요. 제가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걸 알고 웃음을 주려고 그 신문을 가져온 거였어요. 아무리 야구가 좋아도 구치소에 갇힌 처지에 그 기사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지만, 그런 아내의 엉뚱하고도 순수한 모습이 귀여웠어요. 감방 안에서도 아내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났어요. 군에 입대했을 때 첫 면회 선물로 안개꽃을 가져온 일도 잊히지 않아요. 보통 떡이나 통닭을 갖고 오는데 아내는 저를 위로하고 격려하려고 꽃을 갖고 온 거예요. 그때 이 사람을 평생 지켜주겠다고 결심했죠.

▼ 문 후보가 언제 프러포즈를 하던가요.

김정숙 /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요. 늘 마음고생을 시켜서 미안했는데 이제야 손에 반지 하나 끼워줄 수 있게 됐다면서 첫 월급으로 산 실반지를 주더라고요. 순간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 지금 손가락에 낀 반지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문재인 / 어머니가 주신 가톨릭의 묵주 반지예요. 20년 넘게 한 번도 빼지 않은 반지인데, 제 신앙심이 돈독해서 낀 것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아주 독실한 신자신데, 제가 주일에 성당에 잘 안 가기도 하고 뭔가 어영부영하는 것처럼 보이니 걱정돼서 이걸 끼라고 주신 거예요. 장모님도 신심이 대단하시고요.

김정숙 / 제 친가, 외가는 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에요.

▼ 친정에서 결혼을 반대했던 걸로 압니다.

김정숙 /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어요. 부모님께서 만나라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남편만 만났거든요. 남편이 군대 갔을 땐 면회 가고, 절에서 사시 공부를 할 땐 월급 타서 뒷바라지하니까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지금은 사위를 너무 좋아하세요. 친정어머니가 치매신데 가족을 못 알아볼 때도 ‘문 사위’는 알아보셨어요. 어머니가 사위를 참 좋아하셨던가 봐요. 그걸 남편도 잘 알아요. 그래서 처음 발표한 정책이 ‘치매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고마웠죠.

▼ 문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셨는데 집안에서도 페미니스트인가요.

김정숙 / 시어머니가 싫어하는 설거지까지는 바라지 않고 대신 남편이 해야 하는 바깥일이나 저희 강아지와 관련된 일, 제가 못 하는 일에 대해선 도움을 요청해요. 그러면 그게 뭐가 됐든 다 해요. 무겁고 힘든 일들은 제가 얘기하기도 전에 남편이 돌아다니면서 끝내고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달라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남편보다 성미가 급한데, 이 사람은 항상 남의 얘기를 먼저 경청하고 모든 걸 편안하게 받아주죠. 아이들이 너무 늦게 일어나면 저는 세 번까지 시도하고 나서 화를 내는데, 남편은 아이가 피곤한가 봐, 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주죠. 생색내지도 않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고맙고 존경스럽죠.

▼ 집안에서 누가 더 기가 센가요.

김정숙 / 남편이 세지요. 신혼 초에 한 번 심하게 다퉜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싸우더라도 절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더라고요. 스스로 감정이 통제되지 않을 땐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잖아요.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서로에게 느낀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많이 조심해서 그런지 심하게 다툴 일이 없었어요.

문재인 / 그러면서 서로를 알게 되지요.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요. 그 선을 존중해주는 것이지요. 그때까지 대화하다가 풀리지 않으면 좀 더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대화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 대화로 끝을 보자고 하면 서로 충돌할 수 있는데, 서로를 알게 되면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생기게 돼요.

▼ 결혼 초 크게 다툰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문재인 / 제가 변호사가 됐을 때는 요즘과 달리 변호사들이 잘살 때였어요. 다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부인들도 돈을 팍팍 쓰고 그랬는데, 저는 우리 생활을 그렇게 키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아내와 갈등 요소가 있었지요.

김정숙 / 변호사가 됐으면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인 면에서도 좀 업그레이드하려고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전혀 안 그랬어요. 제가 씀씀이가 커져서 집안 살림을 늘리려고 하면 이 사람이 항상 막아섰어요. 하지만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솔선해서 보여줬어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좀 즐기려고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가진 변호사로서의 지위나 능력을 우리 사회의 핍박받는 사람들과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니까 마음이 숙연해져 저도 모르게 보조를 맞추게 되더라고요(웃음).

▼ 그런 신념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문재인 / 선택의 문제였던 거죠. 우선 기본적으로 변호사가 참 좋은 직업이에요. 선택이 자유롭지요. 돈 버는 길을 택할 수도 있고, 공익적인 길을 선택해 법 지식과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후자를 선택하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생활의 규모가 커지고 생활비가 많이 들면 돈벌이에 치중해야 하잖아요. 돈에서 자유로우려면 스스로 절제된 생활을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가 가진 능력의 절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1/3 정도는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공적인 일에 써야지요. 그런 점에서 변호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부인 김정숙 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문 전 대표가 지닌 경상도 남자 특유의 투박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사근사근하고 살가운 성격으로 보였다. 감각적인 패션도 눈길을 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에는 단아한 스커트 정장으로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1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시절의 문재인 후보(왼쪽).
2 무려 7년 연애 끝에 올린 결혼식.
3 연애 시절 MT 가는 기차 안에서 문 후보의 머리를 빗어 주는 김정숙 씨(왼쪽).
4 부산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1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시절의 문재인 후보(왼쪽). 2 무려 7년 연애 끝에 올린 결혼식. 3 연애 시절 MT 가는 기차 안에서 문 후보의 머리를 빗어 주는 김정숙 씨(왼쪽). 4 부산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 패션 감각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데 비결이 뭔가요.

김정숙 / 그런가요?(웃음) 저보다 두 살 위인 친언니의 영향일 거예요. 언니가 미국 뉴욕에 있는 패션기술대학교(FIT)를 나왔어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죠. FIT에서도 아시아인 최초로 의상학 1등상을 받았고요. 언니는 지금 뉴욕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계속 만들며 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언니 옷을 많이 입었는데 남편이 공직 생활을 하면서 거의 못 입게 됐어요. 언니 옷을 입으면 스타일이 남다르니까 남편이 “옷을 왜 그렇게 입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한국은 단정한 분위기를 선호하잖아요.(김씨 주변의 인사에 따르면 김씨는 서울 동평화시장이나 홈쇼핑에서 옷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문 후보의 옷을 직접 골라주시나요.

김정숙 / 가급적 그러려고 하죠. 예전에는 스트라이프가 강한 타이를 좋아했는데, 요새는 기호가 바뀌었어요. 단색 위주의 차분한 타이를 선호하더라고요. 바지 기장이 짧아지고 통이 좁아지는 추세거든요.

▼ 평소 어떻게 내조를 하십니까.

안팎으로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는 한 팀이며, 서로가 조력자예요.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필요한 일을 나눠서 하죠. 남편이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분들을 제가 가서 만나고 있어요. 지난해 추석부터 호남 지역을 일주일에 한 번 1박 2일로 다니고 있어요. 문 후보를 믿고 성원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서였어요. 최근에는 해남, 완도, 강진의 섬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소안도라는 섬에서 독립운동가 김남두 선생님의 며느리인 김양강 할머니를 만났어요. 여든 나이에 홀로 지내는 할머니를 위해 도다리쑥국을 직접 끓여드렸죠.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의 말벗을 해드리면서, 독립운동가 가족의 고충에 대해 얘기를 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내조, 제 발로 찾아가서 어르신들 따뜻한 손잡고 좋은 말씀 듣는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남편에게 필요한 내조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문 후보에게 몇 점을 주고 싶으신지요.

최고 점수가 몇 점인가요? 그 점수 다 주고 싶어요. 문 후보는 믿을 수 있는 남편이고 아이들에게는 정말 자상한 아버지예요. 항상 힘이 되어주고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조언해줍니다. 여러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딱 몇 마디 하는데 그게 큰 도움이 돼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죠. 딸은 지금도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해요. 시집가서도 무슨 일이 있으면 사위랑 같이 아빠에게 상의하러 와요.

▼ 문 후보와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시나요.

둘이 있으면 제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요즘엔 특히 더해요. 지방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와서 남편에게 전하거든요. 대부분이 귀담아서 들어야 하는 말들이어서 ‘짠’ 소리를 많이 하게 돼요.

▼ 한 달 생활비가 궁금합니다.

김정숙 / 다른 집하고 다를 바가 없어요. 근데 요즘은 둘 다 지방을 다녀서 생활비의 반이 교통비로 쓰이고 있어요.

▼ 자녀에게는 어떤 사교육을 시키셨는지요.

김정숙 / 태권도 학원도 사교육인가요? 그렇다면 사교육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뭘 배우게 할 때는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지, 뭘 할 때가 가장 좋은지 항상 먼저 물어보고 결정했어요.(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장남 준용(35) 씨는 건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패션 명문 파슨스 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강사이자 프로그래머,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딸 다혜(34) 씨는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간간이 외부 활동을 하고 있다.)

문재인 / 저희 부모님은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간섭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믿고 저한테 맡겨주셨지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뭘 배워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 모두 각자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가도록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인정해줬습니다.

▼ 그동안 네 명의 대선 후보 배우자를 릴레이 인터뷰했습니다. 공통된 질문이 있었습니다. 촛불 집회에 계속 참석하셨는지 여부와 거기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물었습니다.

김정숙 / 계속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많은 엄마들과 젊은이들은 상식적인 사회, 내 아이가 잘될 수 있는 사회 이런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어르신들도 많이 오셨는데 그분들은 상식이 무너지고 불평등한, 공정하지 않은, 원칙이 없는 이런 나라에서 미래를 기대해도 될지 걱정이 많으셨어요.

문재인 / 저한테도 물어주세요. 하하. 우리 사회가 이런저런 차별이나 갈등이 심하잖아요. 이념적으로는 보수 대 진보, 성적으로는 성차별이나 여성 혐오 같은 문제를 안고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광장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고, 성차별도 없고, 누구나 당당하다는 느낌을 늘 받았어요.

▼ 지금은 경선 준비로 쉴 틈이 없겠지만 여유 시간이 생기면 주로 뭘 하시나요.

문재인 / 원래 걷기를 좋아해요. 거주지가 늘 산자락에 있었어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북한산 자락이든가 구기동의 북한산 자락. 지금은 집을 나서면 바로 서대문구 홍은동 백련산 등산로여서 시간이 나면 집 뒷산을 걸어요. 그러면 마음이 절로 힐링이 되고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는데, 요즘은 통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 좌우명이 있습니까.

문재인 /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입니다. 원칙은 멀리 보고 크게 보는 것입니다. 당장은 손해인 듯해도 결국은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특히 요즘같이 혼란한 시국,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 문 후보는 자신을 고구마에 비유하셨는데, 부인께서는 남편을 어떤 음식에 비유하고 싶으신지요.

된장찌개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처럼 깊은 맛이 있어요. 된장찌개는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 않는 국민 음식이지요. 또한 된장찌개는 해산물, 채소, 고기 등 어떤 재료가 들어가도 고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추가된 식재료 맛을 살리죠. 그래서 문 후보는 된장찌개 같은 남자입니다. 모든 이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편안한 사람이에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는 사람이고요.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대선에서 국민을 보듬어주는 된장찌개 같은 대통령이 나왔으면 합니다. 오늘 저녁 메뉴 고민 중인 주부님들, 된장찌개 어떠세요?


▼ 만일 문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돼 부인이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면 대통령을 어떤 마음자세로 보필할 겁니까.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과 한 팀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역할을, 집에서는 가장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돕고, 대통령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메울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가치관이 같아야 하는데, 저와 문 후보는 그게 맞아서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하.

▼ 퍼스트레이디가 된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십니까.

우선 저만의 스타일로 내조를 하고 싶어요. 롤 모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김정숙 스타일로 돕겠습니다. 지금의 마음가짐과 소신을 지켜가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는 평범한 퍼스트레이디가 되겠습니다. 남편은 업무가 끝나면 광화문에서, 종로에서 국민들과 막걸리 한잔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데 저도 그 마음과 같습니다. 지금처럼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보통 사람이고 싶습니다. 요즘 지방을 다니면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오는데, 앞으로도 계속 직접 찾아다니며 따뜻한 소통을 하고 싶어요. 정책 반영에 도움이 되고 싶고, 특히 여성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이날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됐다. 사흘 뒤인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고 나서 문재인 전 대표에게 추가 질문을 보냈다.

▼ 최근 정국에 대한 문 후보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예상했습니까.

평범한 마음들이 모였기 때문에 당연히 탄핵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광화문이나 전국의 촛불 현장에 참가해보면 엄마, 아이 모두 이웃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헌법도, 헌법재판소도 평범한 국민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국민들의 상식이 반영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 탄핵이 인용될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일터로 가고, 또 저녁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피로를 푸는 생활들이 매일 반복돼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삶이 쌓이고 쌓여야 세상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촛불을 든 시민들이 그랬습니다. 삶을 바꿔내겠다고 마음먹은 시민들께서 느리지만 평화롭게, 마음은 급하지만 자제력을 가지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이죠.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위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국민들이라면 결국 오래된 적폐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탄핵 인용은 그 시작이었어요. 우리 국민들은 일상을 잘 유지해가면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겁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일에 팽목항을 방문하신 이유가 뭔가요.

윤동주의 ‘서시’가 떠올랐어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세월호의 아이들이 별이 되어서 촛불 광장을 비춰주었기 때문에 탄핵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명록에 이렇게 썼어요. ‘얘들아, 너희들이 광장의 별빛이었다’고요. 탄핵 사유에 세월호 참사가 빠져 섭섭했을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지요.

▼ 현재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소감은 어떠신지요.

제게 육체의 손은 두 개에 불과하지만 마음의 손은 수천, 수만 개예요. 나라다운 나라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의 손을 잡고 함께 정권 교체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국민들과 함께 가는 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국민들께서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고 손을 잡아주고 계시기에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더 많은 국민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 열망도 담아야 합니다. 지난 대선 이후 혹독한 검증을 거치며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국민들이 주신 지지율 1위를 정권 교체로 보답하겠습니다.

▼ 문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또 시를 소개해야겠네요(웃음). 신동엽의 ‘산문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을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중략)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후략).”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촛불 민심의 염원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이지요. 대통령은 국민과 잘 소통해야 합니다. 제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함께 잘사는 나라, 권력이 아닌 국민들을 위해 평화를 사랑하고 외국으로부터 주권을 지키는 나라, 다 함께 돌보고 안전하고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가 진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 5년 전에는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운명”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대선 주자로 나선 심정은 어떠신가요.

지금은 ‘숙명’이 되었습니다(웃음).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김영화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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