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가 남의 물건에 손댔을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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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마트나 문방구에서 물건을 집어 오거나, 부모의 돈에 몰래 손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을까.

이때 아이를 과하게 혼을 내거나 아이의 잘못을 숨겨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체벌이 너무 심하면 아이는 혼나면서 자신의 잘못이 용서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부모가 자신을 심하게 대한 것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된다. 또한 나중에 다른 실수를 했을 때 아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실수할 것 같으면 시도하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는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흐지부지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나쁜 행동인지 모른다. 혹여 알아도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잘못된 도덕관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어느 집은 아빠에게만 비밀로 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가족 간에 비밀을 만들어 분열이 생기게 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상의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굉장히 방해가 된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를 볼 때마다 들킬까 봐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가장 많이 하는 대처가 아마 잘못된 행동이라고 가르쳐주지만 차마 물건을 돌려주지는 못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에 대한 나쁜 소문이 퍼질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러한 대처도 아이의 앞길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아직 소유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고,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통제력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일 만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도덕관념, 자존감, 부모와의 관계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일까. 우선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하기 전,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야 한다. 당황스럽고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아이의 행동 원인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둘째, 아이의 설명부터 들어본다. 자초지종을 듣기 전에 화내거나 야단치면 거짓말과 변명을 불러온다. 셋째,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 행동이 매우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말해준다.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고 매우 아낀단다. 실수가 아닌 다음에야 네 소유가 아닌 것을 들고 오는 것이나 취하는 것은 안 돼. 남의 것은 그 사람의 허락 없이 절대 손대서는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넷째, 가져온 물건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친구 집에서 물건을 들고 왔다면 아이와 같이 가서 돌려주고, 가게에서 물건을 들고 왔다면 같이 가서 값을 치른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직접 사과하게 한다. 다섯째, 잘못을 고백했거나 물건을 돌려주고 난 후에 부끄럽고 힘든 일을 마친 아이의 노력을 칭찬한다. 그 일로 아이가 의기소침해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도록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다는 말도 해준다.

여섯째, 이후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관찰한다. 또 그런 행동을 할지 모르니 감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용돈이나 시간, 물건을 관리하는 것을 세심하게 도와주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부모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혹시 또래에 비해 아이의 용돈을 너무 적게 주지는 않았는지, 장난감이나 물건을 너무 사주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내 행동 중 아이에게 잘못된 도덕관념을 심어준 것은 없었는지(예를 들어 회사의 물건을 집에 가져다 쓰거나 물건을 살 때 많이 거슬러진 돈을 말없이 주머니에 넣은 일은 없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아이가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 ‘도둑’이라든가 ‘거짓말쟁이’라는 등 아이가 심하게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말들을 하면서 야단을 치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에 손상을 입고 절망하게 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도둑놈’이라는 꼬리표에 맞게 반항적으로 그 말처럼 행동해 버릴 수도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아이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지,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끝으로 성장하면서 한 번쯤 할 수는 있지만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이유가 어떻든 한 번 이상 계속된다면 나중에 다른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의논하도록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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