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김선향 교사의 ‘아하,클래식’]‘Op.1’ ‘D.328’… 클래식 음악 제목은 어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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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 번호

누구나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 “어, 이 노래 정말 좋은데!” 하고 노래의 제목을 알기 위해 인터넷에서 노래 제목을 찾아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요즘에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나온 배경음악들도 선곡표가 있고, 가사 몇 구절만 기억하고 있어도 어떤 노래인지 찾을 수 있는 검색 사이트가 많아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인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참 좋다고 생각했던 곡도 익숙하지 않은 작곡가 이름과 뭔가 복잡해 보이는 긴 제목 때문에 다시 듣고 싶어도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 작품번호는 어떻게 붙이나요

클래식에서는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고,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특정한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음악을 ‘절대음악(Absolute Music)’이라 하여 후에 낭만주의 시대에 유행한 문학작품이나 그림에 영향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한 ‘표제음악(Program Music)’과 다르게 분류하지요. 절대음악에서는 어떤 형식으로 작곡되었는지, 그 형식으로 작곡된 몇 번째 곡인지, 작곡가의 몇 번째 출판된 곡인지와 어떤 조성으로 작곡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제목을 대신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1악장 악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1악장 악보.
예를 들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Op.2 No.1 f minor’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첫 번째(No.1) 곡이고, 베토벤이 작곡한 후에 출판한 작품 중에서는 두 번째(Op.2) 곡이며, 조성은 바단조(f minor)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No.’는 흔히 쓰이는 번호의 약자로 장르의 일련번호이며, ‘Op.’는 라틴어로 ‘작품’을 뜻하는 ‘Opus’의 약자로 작곡가가 악보를 출판한 순서로 붙이는 것입니다. 궁정이나 귀족의 소속 없이 자신의 악보를 출판하는 것으로 생활을 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에 의해 처음으로 붙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작품번호 1번(Op.1)으로 피아노 3중주 3개를, Op.2(작품번호 2번)로 묶어서 피아노 소나타 3개를(No.1, No.2, No.3) 출판하는데, 이렇게 한 작품번호에 몇 개씩 작품이 있는 경우에는 Op.1-1, Op.1-2로 쓰기도 합니다.

○ 작품번호를 나타내는 알파벳의 뜻

그러면 베토벤 이전의 작곡가들은 어떻게 작품번호를 매겼을까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사망 200년 후인 1950년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가 바흐의 작품들을 장르별로 정리해서 독일어로 바흐 작품 목록이라는 뜻의 ‘Bach Werke Verzeichnis’의 앞 글자를 따서 BWV 번호를 붙입니다. 그 후에 헨델의 작품은 헨델 작품 목록이라는 뜻의 독일어 약자인 HWV를 붙이게 되었고요, 바흐와 헨델과 함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는 P, F, R 등의 번호가 쓰이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번호는 프랑스의 음악학자 피터 리옹이 정리한 R(리옹 번호)입니다.

비발디, 바흐,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을 담고 있는 CD 표지.
비발디, 바흐,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을 담고 있는 CD 표지.
Op. 번호를 쓰지 않는 작곡가들의 작품번호는 비발디의 R 번호처럼 정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작품번호를 매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작품번호가 대표적이지요. 하이든의 작품번호는 Hob.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네덜란드의 음악학자이자 유명 작곡가들의 자필 악보를 사진으로 남겨 방대한 자료실을 운영했던 안토니 판 호보켄에 의해 정리되어 호보켄(Hoboken)의 이름을 딴 번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보켄은 바로 숫자로 나열하지 않고, 먼저 장르별로 작품을 나누고 장르별로 로마숫자(Ⅰ, Ⅱ, Ⅲ)를 붙인 후 그 뒤에 연대순으로 아라비아 숫자를 붙였습니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는 35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생계를 위해 악보를 여기저기 팔았다고 전해지는 모차르트는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작품이 있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작품 정리가 꼭 필요한 작곡가이죠. 모차르트의 작품번호는 K.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식물학자이자 광물학자이면서 모차르트의 열렬한 팬이던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폰 쾨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쾨헬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구하여 모든 작품을 작곡 연대순으로 정리해 번호를 붙인 것이랍니다.

율리우스 슈미트(1854∼1935) 작 ‘비엔나 타운하우스에서 열린 슈베르트의 밤’. 비엔나시립역사박물관 소장
율리우스 슈미트(1854∼1935) 작 ‘비엔나 타운하우스에서 열린 슈베르트의 밤’. 비엔나시립역사박물관 소장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 슈베르트는 베토벤보다 뒤 세대의 작곡가라 출판된 작품번호가 있을 것 같은데, 워낙 어렵게 살면서 소심했던 슈베르트는 제때 작품을 출판하지 못해서 작품번호 있는 것이 아주 적고, 있어도 작곡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음악 문헌학자이자 유명 작곡가들의 전기작가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는 슈베르트 작품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998곡에 달하는 슈베르트 작품을 작곡한 순서에 따라 정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D.(Deutsch) 번호를 쓰고 있습니다.

최초의 작품번호를 썼던 베토벤은 WoO. 번호를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독일어로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Werks ohne Opuszahl)의 약자로, 말 그대로 작곡가가 생전에 작품번호를 매기지 않은 작품을 모아 따로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제목만 자세히 봐도 곡이 작곡된 형식(소나타, 협주곡, 실내악, 교향곡)과 작곡가의 초기 작품인지 후기 작품인지도 알 수 있으니 클래식 음악을 대할 때는 음악을 들으며 제목부터 찬찬히 연구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김선향 선화예고 교사
#클래식 음악 제목#베토벤 작품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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