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은하철도 999’의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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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에 대한 일본인의 유별난 사랑은 유명하다. 2015년 3월 오사카와 삿포로를 달리던 특급침대열차의 퇴역식이 열렸을 때는 마지막 배웅을 위해 35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열차 사진가, 기념품 수집가 등 철도 애호가들이 200여만 명, 관련 산업은 40억 엔 규모로 추정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도 날렵한 우주선 대신 증기기관차를 닮은 초광속기차가 등장한다. 엄마 잃은 10세 소년이 주인공인데 정체가 모호한 금발 미인 메텔의 도움으로 기차에 탑승한다. 영생의 기계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기차 종점 안드로메다를 향한 여정이다. ‘은하철도999’는 1977년 잡지 연재로 발표된 뒤 TV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국내서는 1981년 TV 방영 이후 1996년 2009년 재방영됐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우주정거장엔 햇빛이 쏟아지네∼.’ 4050세대 가운데 많은 이들이 김국환이 부른 ‘은하철도 999’의 주제가를 따라 부르면서 우주에의 꿈을 키웠다.

▷‘은하철도 999’ 발표 40주년 기념전시가 서울에서 열리면서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 씨(79)가 최근 내한했다. 삶과 죽음, 영생과 유한, 기계와 인간 등 아이들에게 다소 난해한 주제를 녹여낸 만화에서 주인공 철이는 결국 기계의 몸 대신 인간의 삶을 택한다. 마쓰모토 씨는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대충대충 살지 않겠나”라고 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은하철도 999’의 결말이 더욱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일본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에는 100만 번 살고 100만 번 죽은 고양이가 등장한다. 슬픔 이별 상실의 감정을 몰랐던 고양이는 100만 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으나 사랑하는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통곡한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100만 번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기에 100만1번째 환생을 포기한다. 영생의 삶보다 후회하지 않을 단 한 번의 삶을 사는 것, 그게 바로 철이와 고양이가 터득한 소중한 교훈이 아니었을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철도#은하철도 999#마쓰모토 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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