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은 채로 살아온 9년… 기적이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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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틴 피스토리우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이유진 옮김/368쪽·1만5000원·푸른숲

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감금증후군을 앓던 어린 시절의 모습(왼쪽 사진). 저자는 기적같이 병을 극복해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푸른숲 제공
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감금증후군을 앓던 어린 시절의 모습(왼쪽 사진). 저자는 기적같이 병을 극복해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푸른숲 제공
다소 자극적인 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실제로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12세가 된 1988년 원인을 모른 채 식물인간이 됐다. 기적과 함께 더 큰 절망은 4년 후 찾아왔다. 의식이 돌아왔지만 누구도 그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살아있음을 오직 자신만 아는 절대 고독의 상태.

현재의 의학 기술로 추정되는 저자의 병명은 ‘감금증후군’이다. 100만 명 중 1명 미만이 걸리는 불치병이다. 외관상 혼수상태 같지만 의식은 정상인과 동일하고 운동기능만 차단된 채로 지내게 된다. 이 책에는 ‘유령인간’으로 9년을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이 기록돼 있다.

절망, 고통, 외로움. 저자는 9년간의 시간을 이 셋과 함께했다고 고백한다. 돌봄 시설의 간병인들은 “쓰레기”라는 욕설과 함께 구타를 하고, 서슴없이 성폭행을 자행한다. 가족 파티에 참석한 한 친척은 “가엾은 저 애를 봐. 무슨 인생이 저러니”라는 말을 그의 눈앞에서 내뱉었다.

가장 큰 절망은 어머니의 입에서 나왔다. 간병에 지친 어머니가 자신의 눈앞에서 울먹이며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순간이다. 눈 뜨고 당한 그의 처절한 고통의 기록은 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기적 역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간병을 하던 버나가 우연히 그와 마주친 눈에서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병원 검사 결과 그가 ‘살아있음’이 증명됐다. 이후 그는 재활치료를 통해 제자리를 찾아갔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웹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

문장은 담백하고, 구성은 간결하지만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그의 삶 덕분에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좌절, 고통, 분노, 고립감이 시대의 키워드가 된 지금, 절망을 헤쳐나간 그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원제는 ‘Ghost boy’.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식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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