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처참한 선체 속에서… 얘들아, 이제 집에 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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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밤새 인양 지켜본 미수습자 가족들

그렇게 아팠던 날들이 이제는 마무리될 수 있을까. 23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水道) 해역에서 세월호를 바라보던 미수습자 가족의 표정에서 사무친 그리움이 배어 나왔다. 2014년 4월 16일을 꿈에서도 잊지 못하는 경기 안산시 단원고 생존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 뜬눈으로 밤새운 미수습자 가족들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 인양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22일 오전 배를 타고 작업 현장 근처로 향했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이 학교 교사 양승진 고창석, 그리고 일반인 탑승객인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등 총 9명의 가족이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뒤 23일 오전 가족들은 배 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명 전원의 귀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48)는 “미수습자 엄마인 저를 유가족이 될 수 있게 도와 달라”며 눈물지었다.

이날 가장 안타까움을 자아낸 이는 배에 타지 못하고 멀리 팽목항에서 가족을 그리워한 미수습자 가족이었다. 양승진 씨의 어머니 남상옥 씨(84)는 세월호 인양 이틀째인 23일을 팽목항에서 보냈다. 늦게 도착해 배 시간을 놓친 탓이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팽목항 곳곳에 걸린 아들의 사진을 한참이나 매만졌다. 마치 눈앞에 생생히 있는 것처럼 아들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그러나 사진 속의 아들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며칠 동안이나 울어 퉁퉁 부은 어머니의 눈에서는 속절없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눈물 가득한 얼굴을 사진에 비빌 때마다 사진 속 아들의 얼굴로 눈물이 옮겨 맺혔다. 양 씨의 제수인 유동수 씨(54)는 “사고 이후에 기력을 급격히 잃으셔서 병원 신세를 꽤 많이 졌다”며 시어머니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 3년을 하루같이 버틴 가족들

미수습자 가족들은 남해의 해풍을 3년 가까이 몸으로 겪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2014년 4월 중순 무렵 팽목항은 차디찬 바람으로 기온이 영하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상당수 미수습자 가족의 건강이 악화됐다. 세월호 참사 후부터 진도군을 지킨 권오복 씨(63)는 치아 3개가 빠졌다. 그는 동생인 미수습자 권재근 씨와 그의 아들 혁규 군을 기다리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진도에서 보냈다. 권 씨는 “나는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하루빨리 동생 가족을 데리고 가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하루 종일 세월호 인양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희귀병인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47)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인양 현장을 볼 수 있는 배에 올랐다. 박 씨는 “내 몸보다는 다윤이를 빨리 데리고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족들은 오후 늦게 전해진 인양 지연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 위에 올라서는 순간까지 배에 머무를 예정이다.

○ “어서 돌아와라 친구들아”

세월호에서 구조돼 이제 대학생이 된 단원고 출신 학생들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인양을 지켜봤다. 그들은 4월만 되면, 흐드러진 벚꽃을 볼 때면, 세월호 뉴스가 나오면 몸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생존자들은 극한의 경험을 겪은 후 성격이 바뀌었다. 한 생존자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월호 참사 전 활달했던 아이가 지금은 귀에 이어폰만 꽂고 다니며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성향이 됐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다”고 고백했다.

미수습자 중 한 명의 절친한 친구였다는 김모 씨(21)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친구가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인양 소식을 접한 21일부터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양정원 씨(21·여)는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늘 마음 한쪽에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 자신만 살아서 왔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세월호 인양 장면을 TV로 보며 ‘혹시나 한 명이라도 못 찾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며 “미수습자 가족 모두가 잃어버린 가족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양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왜 이제야…’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생존자 박준혁 씨(21)는 사학을 공부하며 학생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학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도=황성호 hsh0330@donga.com·이호재·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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