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찍다보니 아이디어 막 솟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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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소외아동 대상 영화학교… 창의력-표현력 키우기 효과 톡톡
아이들 소품 준비하며 연기 경쟁… “매번 다른 사람 될수있어 신나”

21일 서울 구로구 우신지역아동센터에서 영화학교 수업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연기 실습을 하고 있다. 촬영감독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들의 연기를 찍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1일 서울 구로구 우신지역아동센터에서 영화학교 수업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연기 실습을 하고 있다. 촬영감독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이들의 연기를 찍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주인공 욕심은 없어요. 그냥 연기를 하면서 매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신나고 재밌어요.”

21일 서울 구로구 우신지역아동센터 교실에서 때아닌 연기 경쟁이 벌어졌다. 교실 앞 가상 무대에서 각자 다른 포즈를 취한 아이들이 힘겹게 자세를 유지했다. 교사가 “액션(Action)”을 외치자 떠들썩했던 교실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차례를 기다리며 발표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표정도 자못 진지했다. 촬영 경쟁도 치열했다. 자세를 낮추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찍는 모습이 제법 촬영감독 같았다.

생소한 풍경의 이날 수업은 관내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구로구가 열고 있는 영화학교다. 학생들은 지난달부터 6월까지 현직 뮤지컬 배우에게 기본적인 영화 이론과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다.

이날 주어진 미션은 조각상(彫刻像) 연기였다. 짝을 지어 간단한 동작으로 몸을 푼 아이들에게 교사는 계절이란 주제를 던졌다. 두 팀으로 나뉜 아이들은 각각 여름과 겨울을 선택했다. 교사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주어진 주제로 스토리를 짜고 역할을 정해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는 것은 온전히 아이들 몫이었다.

당황할 법한 과제였지만 아이들은 교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러 가지 포즈를 지어 가며 의견을 나눴다. 겨울을 택한 아이들은 눈싸움, 산타클로스, 루돌프처럼 겨울과 연관된 단어를 여러 개 떠올리더니 재빨리 역할을 분담했다. 아이들은 비중 있는 역할에 애써 집착하지 않았다. 구석에서 두 팔로 원을 그린 채 가만히 서 있는 눈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흰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려 금세 사슴뿔 같은 소품까지 만들었다. 준비한 장면이 완성되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다물고 자세를 유지했다. 제시어를 던져 준 지 불과 10분 만이다.

교사 임한나 씨(31·여)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표현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아이들의 아이디어와 표현력을 최대한 끄집어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생애 첫 번째 연기 수업을 받으며 처음에는 몸을 숨기던 아이들도 달라졌다. 정유미(가명·9) 양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머릿속 생각들을 몸으로 표현하는 게 무척 재밌다”면서 “연기를 하다 보면 마치 내가 드라마 속 배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6월에는 시나리오부터 제작까지 아이들이 맡아 2∼3분 분량의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촬영한다. 임정민(가명·11) 양은 “주인공보다는 여러 역할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면서 “하루빨리 진짜 촬영장에서 영화를 찍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소외아동#우신지역아동센터#연기수업#저소득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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