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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인공지능, 그 의미를 재설정해야 할 때

김재호 과학평론가

입력 2017-03-21 03:00:00 수정 2017-03-21 04: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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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 여름 워크숍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말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그 시절 존 매카시 교수와 인지과학자인 마빈 민스키는 기계가 과연 인간의 지능을 따라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사실 생각하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건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 옛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서 수백 점의 스케치와 설계도를 남겼다. 자율성의 기계를 만들어보고자 한 것이다. 국내 한 교통박물관은 다빈치의 설계도를 토대로 구현한 태엽자동차를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인공지능은 마치 빅뱅 같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릴 듯한 기세다. 인공지능은 대세가 되었고 과학기술과 산업, 인문학과 디자인·예술 분야 등 전 분야에 두루 걸쳐 있다. 연구개발(R&D)과 벤처투자에 인공지능이란 단어가 한 번쯤 들어가야 주목을 받는다. 인공지능은 의학, 공학, 생물학, 경영학, 언어학, 통번역학, 수학, 통계학, 문학, 법학, 스포츠학 등 대부분에 적용된다. 이러다가 모든 학과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재편될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은 금융투자를 조언해주는 로봇어드바이저부터 기사를 대신 써주는 로봇기자, 외로움을 달래주는 소셜로봇, 스케줄 관리와 음악을 틀어주는 인공지능 음성비서, 공동으로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협업로봇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소설을 쓰고 재즈를 연주하며 재난 현장과 우주를 누빈다. 또한 인공지능은 수술을 맡고 복잡한 수학의 정리를 증명하고 생산과 제조 공정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

18일 기준,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인공지능을 검색하면 관련 뉴스는 14만3775건이 나온다. 구글에서 ‘Artificial Intelligence’를 검색하면 8810만 개의 웹페이지가 나온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두뇌 게임을 펼치더니, 이젠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의 교육까지 넘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낳는 격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뭘까. 인공지능이 대체 무엇이기에 일자리 문제니, 로봇세금이니, 인격권이니, 디스토피아니 하는 논의들이 끊이지 않는 걸까. 스탠퍼드대에서 펴낸 인공지능 100년 보고서를 보면 인공지능은 계산 기술의 집합이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이란 용어는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 로봇과 하드웨어가 혼융된 개념으로 사용된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기술의 집적체라기보다는 통로에 가깝다. 정보가 인공지능을 통해 흘러가는 것이지 정보 자체가 인공지능은 아니다. 인공지능을 너무 넓게 해석하면 유토피아적 낙관론이나 디스토피아적 비관론에 빠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클라우드는 아니고, 빅데이터는 더더욱 아니며, 인터넷이 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분명 인간의 노동을 대체(자동화)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예견(계산)하게 될 것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개발한 박스터는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의 정보를 다른 로봇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최근엔 인간의 뇌파와 연계해 작동하는 차원에서 개발하고 있다. 사람이 박스터의 실수를 알아채면 뇌파를 감지해 행동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박스터 로봇의 작업이 더욱 정교해졌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인간이 뇌파 캡을 쓰고 로봇과 연결된 상황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자동화와 계산 가능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고, 특정 영역의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무인 드론은 정찰과 탐색의 역할을 하고 자율주행차는 인간을 태우고 다닌다는 뜻이다. 모든 인공지능이 같은 인공지능이 아니기 때문이고 아무리 상호 소통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하드웨어로 구현되기엔 너무나 특수한 임무를 띠고 있다. 범용의 인공지능이라는 것 자체가 인공지능 개발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알파고가 프랑스 리옹에서 움직이는 로봇셔틀을 제어하긴 힘들다. 알파고는 바둑 혹은 다음 게임을 위한 준비를 하기에도 벅차다.

인간이라는 육체는 유한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마음과 지능은 무한하다. 강한 혹은 슈퍼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모방하기 힘들다. 모든 인간의 능력을 총합해 슈퍼맨이 탄생하지 못하듯, 슈퍼 인공지능은 불가능에 가깝다. 근삿값으로 비슷해질 순 있지만 결코 같지 않다. 한 끗 차이다. 그런데 이 한 끗이 무한에 가깝다.

인공지능이란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다. 로봇이 다 같은 로봇은 아니고, 소프트웨어라고 해서 다 같은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고 비슷한 게 아니다. 인공지능이란 말이 주는 오해를 덜기 위해 인공지능이란 어휘부터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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