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간섭 지나치면 관료 무기력증… 실무는 각 부처에 맡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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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뉴리더십 세우자]<3> 실무자 의견 존중하는 대통령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는 ‘만기친람’식 국정운영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하고 내각과 보좌진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구조에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응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차기 정부가 맞닥뜨릴 현실도 녹록지 않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장기 경기침체 등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다. 전문가들은 상명하달식 지시로 근시안적 정책을 재생산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내각에 실권을 주면서 토론과 조율을 통해 해법을 찾아내는 유연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대통령 만기친람에 공직사회 마비

2014년 2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재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과 발표 내용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사전에 전혀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담화 직후 브리핑을 열려던 계획을 급히 취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직접 모든 현안을 챙기는 만기친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각종 현안에 대해 직접 지시하면서 주무 부처들의 의견이 묵살되거나 일정이 갑자기 뒤바뀌어 혼선을 빚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14년 3월 16일 오후 국무조정실은 다음 날 박 전 대통령이 주재하기로 했던 규제개혁장관회의 브리핑 도중 청와대에서 회의 연기 사실을 통보받았다. 주무 부처가 전날 오후까지 회의 연기 사실조차 모르는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공직사회가 위기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는 복지부동의 악순환이 벌어졌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공직사회의 무기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로 꼽힌다. 보건복지부는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처음 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늑장 대처로 일관했다. 특히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공개를 놓고 청와대 눈치를 보다가 확산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전기료 누진제와 미세먼지 오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을 때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기존 정부 입장을 고수하다가 청와대의 지시가 내려오자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 “책임장관제 운영해야”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은 ‘조급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통령이 임기 중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장관들을 믿지 못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리는 과욕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관료들은 성과 위주의 형식적 보고에 그치게 되고, 대통령의 인식은 민심과 더욱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 방향을 제시하되 장관 등 책임자들에게 실권을 줘 공직사회의 능동성과 창의성을 살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경제, 외교·안보, 사회통합 등 현안이 많은 분야는 예산과 인사권을 보장하는 책임장관 제도를 운영하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거중 조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적어도 금융, 철도 등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거나 국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공공기관에는 낙하산을 내려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현안에 대한 디테일은 대통령이 장관보다, 장관은 국장보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며 “부처는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모아 의견을 듣고 해법을 찾아내는 민주적 토론의 소양을 갖춘 인물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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