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기자와 설전 자주 벌일수록… 국민과 가까워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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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뉴리더쉽 세우자]<1> 매주 언론과 대화하는 대통령을


에볼라 사태가 미 전역을 강타한 2014년 10월 백악관 브리핑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향해 기자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느냐?” “백악관이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과 설전을 벌인 뒤 측근들을 질타했다. “빨리 사태를 해결해 다음 회견 때는 저런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하세요.”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조 바이든 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론 클레인 변호사를 ‘에볼라 차르’로 임명해 에볼라 대책을 총지휘하도록 했다.

같은 해 1월 6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임 이후 10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시 기자들은 순서를 정해 12개 질문을 던졌다. 질문지는 청와대의 요청으로 사전에 전달됐다. 질문에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이나 불통 논란과 같은 민감한 현안도 있었지만 문제는 박 대통령의 답변에 추가 질문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이 ‘짜인 각본’대로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한국의 이런 ‘맥 빠진’ 대통령 기자회견은 지금까지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 국민과 점점 멀어지는 대한민국 대통령

하세헌 경북대 교수(정치학)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의 첫 단초는 지난해 4·13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됐음에도 협치에 나서지 않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당시 언론에선 일관되게 ‘4·13총선 민심은 양보와 타협에 기초한 협치 요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총선 패배 이후 야당 대표를 딱 한 차례 만났다. 그마저 115분 동안 북핵 해법 등을 두고 설전만 벌이다 끝났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수시로 열었다면 냉각된 정국 해법을 두고 박 전 대통령이 추가 의견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연례행사처럼 굳어지면서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 기회도 원천 차단됐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부분 참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 이에 대한 정치권이나 국민의 의견이 대통령에게 다시 전달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소통의 단절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매주 기자회견을 열어 난상토론을 벌이려면 설화(舌禍)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만큼 순발력이 필요하다. 현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즉답이 어렵다. 물론 구체적 내용은 참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반대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타협점을 찾아내는 건 대통령의 몫이다. 매주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며 국민의 신뢰를 쌓았다면 ‘세월호 7시간 논란’과 같은 소모적 공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민주적 토론이 가능한 ‘듣는 리더십’”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꾸로 대통령보다 장관이, 장관보다 국장이 더 많이 아는데도 위에서 밑으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 “기자들의 비판적 시각에 책임감을 갖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박 전 대통령보다는 언론과의 접촉면이 넓었다. 특히 임기 5년간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45회였지만 1년에 채 10회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새벽에도 TV에 등장한다. 지난해 4월 16일 규모 7.3의 강진이 규슈 구마모토(熊本)를 강타했을 때다. 당시 아베 총리가 TV 앞에 선 시간은 오전 3시 반이었다. 같은 달 14일에는 도쿄 시내에서 식사를 하다 말고 지진 피해와 관련해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기도 했다. 내각제 총리와 대통령의 위상이 다를 수 있지만 이런 파격적 소통 없이는 임기 5년마다 되풀이되는 레임덕과 정부 실패를 극복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1월 18일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임기 말 사면 논란 등을 두고 기자들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어 오바마 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취재원과 기자) 관계의 핵심이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질문을 던져야 백악관에 있는 우리도 국민에게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이재명 egija@donga.com·송찬욱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대통령#뉴리더쉽#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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