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저는 뒷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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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16년간 한국에서 살면서 여러 기관 및 회사에서 일해 왔다. 교육부 산하기관에서 3년, 서울시청에서 6개월, 대학교 2곳에서는 총 3년,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2년 반 동안 근무했다. 재미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딱 한 가지가 빠졌다. 어디서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랑 일을 했든지 어느 누구도 내게 뇌물을 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게 밑밥을 깔거나 기름칠을 하지 않았고, ‘사바사바’ 하거나 뒷돈을 찔러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내게 약을 치지 않았고, ‘짜웅’ 하지 않았다. 뇌물과 관련된 표현이 참 다양하고 웃긴 것도 많다. 이래서 제2언어를 배우는 재미가 있는가 보다. 물론 세계 어느 언어에나 이런 표현은 많지만. 아무튼 뇌물을 받을 기회조차 내게 오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돈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나? 참으로 아쉽다! 내게 줘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리 나를 쉽게 평가했단 말인가?

물론 농담이다. 실은 그간 아무도 뇌물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내게 아무 힘, 연줄, ‘빽’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부적절한 부탁을 도와줄 신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수많은 높은 분들이 뇌물을 줬거나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무원이나 정부 관리들은 물론이고 회사의 간부나 회장까지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고 하는 소리가 많다.

이런 뉴스는 정부나 회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한다. ‘다들 하는데 왜 내가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슬슬 생기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른 생각이다. 부정부패는 생산 실비, 그리고 거래 비용을 가중시킨다. 결국 우리 모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나한테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나의 집, 가족, 고양이까지 다 한국에 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니 나도 한번 해보자. 매년 부패지수를 발표하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올해 1월 새로운 부패지수를 발표했다. 올해는 덴마크와 뉴질랜드가 1위를 차지했다. 두 나라는 100점 중 90점의 점수를 받았다. 꼴찌는 176위로 나오는 소말리아다. 한국은 53점으로 52번째 나라였다. 한국보다 더 낮은 순위를 차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슬로바키아(54위), 헝가리(57위), 이탈리아(60위), 그리스(69위), 터키(75위), 멕시코(123위)다. 나는 한국이 최소한 25위로 올라서면 좋겠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뿌듯하겠다.

옛 한국 직장에 있을 때 한 경영자는 엄격하고 부하들에게 가혹한 리더였다. 그런데 어느 날은 그가 느닷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 동료들은 모두 궁금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답은 다음 날 아침 신문에 나왔다. 그는 특정 회사가 입찰에서 경쟁사를 제치고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뒷돈을 챙겼다는 혐의로 체포되고 기소됐다. 법정에서 유죄로 판결되고 투옥됐다. 당연히 직장에서 해고됐다.

어린아이가 있는 한 가족의 가장이어서 좀 안타까웠다. 이 사람은 거물도 아닌 그저 중간관리자였을 뿐이다. 그때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가 높은 지위에만 있었더라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벌을 교묘히 피해 나갈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드디어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고 해도 수갑을 찰 수 있는 시대가 왔나 보다. 이는 큰 변화의 징조이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사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어떤 지위를 막론하고 깨끗해지면 우리 모두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깨끗해지는 것이 높은 지위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미천한 신분인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 개개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은 그동안 아무도 내게 약을 치거나, 뒷돈을 찌르거나, ‘짜웅’ 하지 않아서 정말 매일매일 감사한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뇌물#연줄#부패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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