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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였던 매듭 거의 풀었는데… 정치권이 다시 갈등 부추기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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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였던 매듭 거의 풀었는데… 정치권이 다시 갈등 부추기려해”

김지현기자 입력 2017-03-06 03:00수정 2017-03-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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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 논란 10년]故황유미씨 부친 등 피해자 5명 무료변론… ‘중재 역할’ 박상훈 변호사 인터뷰 《 2014년 2월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진성전자’에 다니다 사망한 ‘윤미’와 딸의 죽음을 억울해하는 아버지 ‘상구’의 이야기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2007년 3월 6일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 씨(당시 23세)와 그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다. 영화에는 상구 측 변호를 맡아 진성전자가 고용한 대형 로펌과 대항하는 열혈 변호사 한 명이 등장한다.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김태윤 감독은 개봉 후 인터뷰에서 “영화 속 설정대로 노동법 전문 판사셨고 지금 로펌에서 일하는 분이다. 그분도 아무 대가 없이 들어오셔서 사건을 끝까지 하고 계신다”고 소개했다. 유미 씨 10주기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 화우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해 온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내 백혈병 논란을 쭉 지켜봐 온 증인이다. 》
 

6일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였던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아버지 황상기 씨의 첫 변호인이었던 박상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를 2월 27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 화우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은 가족대책위원회 법률대리인으로 활동 중인 박 변호사는 중재자의 입장으로 보낸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담담히 털어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박 변호사는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2009년부터 6년간 황상기 씨 등 5명의 무료 변호를 맡았다. 2014년 9월부터는 황 씨가 속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서 분리된 가족대책위원회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이 사건에 투입한 개인 시간만 1000시간이 넘는다고 했다.

“저도 그 영화에 1000만 원이나 투자했어요.”

영화 이야기를 꺼내자 박 변호사가 웃으며 얘기했다. 당시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영화 속 구체적인 사실 관계는 좀 다르다. 하지만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대신 ‘투쟁과 조정을 병행해야 한다’는 게 영화 속 그리고 실제 나의 생각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였고, 대형 로펌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그가 이 일에 처음 발을 들인 시점은 2009년이다. 2007년 3월 유미 씨 사망 후 반올림이 발족하면서 ‘삼성 백혈병’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되던 때였다.

법원을 떠난 지 만 2년 된 그에게 황상기 씨 등의 무료 변호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국내 최대 고객사인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었기에 회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내 시간과 회사 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하겠다”며 회사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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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적으로 돌린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때까지 확인된 팩트는 삼성전자 직원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것뿐이었죠. 원인이 뭔지 찾는 건 사회적으로도, 노동법 전공자인 저에게도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라 생각해 받아들였습니다.”

2010년 1월 11일. 그는 첫 소장을 내던 날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2016년 8월 30일 마지막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무려 6년 반이 걸렸다.

황상기 씨 등 2명은 2심에서 사실상 승소했고, 고 황민웅 씨 유족 등 3명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2승 3패’인 셈이다. 이 사안은 법원 판결보다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 그의 생각이 결과적으로 맞았던 셈이다.

“만일 5건을 모두 승소했더라면 삼성이 산재를 인정 안 해준 나쁜 기업이죠. 반대로 전부 패소했더라면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인 거고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고 틀리다고 볼 수 없는 ‘의미 있는 무승부’가 될 가능성이 컸기에 조정으로 풀어야 한다고 봤다는 거다.

2012년 11월 그가 처음 대화를 제안하자 반올림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그가 협상을 중시하는 인물이니 당분간 모임에서 배제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는 “어렵게 대화를 시작했지만 삼성과 반올림은 2년 동안 ‘샅바 싸움’만 했다”고 회고했다. 반올림은 문제가 해결될 경우 시민운동단체로서의 동력이 상실될 우려가 컸고, 삼성은 “보상을 해주면 반도체 사업이 망할 것”이란 내부 강경파 반발에 부닥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공전(空轉)만 반복한 지 2년째 되던 2014년 3월, 그는 양측에 사과, 보상, 대책을 3대 내용으로 담은 의견서를 제시했다. 마침 한 달 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3의 중재 기구’를 세우자고 제안하면서 조금씩 진전이 생기는 듯했다. 그해 5월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던 권오현 부회장이 첫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5∼11월 7차례 협상이 이어졌지만 이견만 늘고 진척은 없었다. 지친 유가족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겼다. 반올림 8명 중 6명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책임공방만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가족대책위’(가대위)로 분리해 나왔다.

박 변호사는 2014년 9월부터 가대위 법률대리인을 맡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구성에 나섰다.

조정위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2014년 12월 출범했다. 이후 반올림, 삼성전자, 가대위 협상주체 3곳을 불러 모아 6차례 협상을 벌였다. 반년 만인 2015년 7월에는 ‘사단법인 설립을 통한 보상을 하라’는 조정권고안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여전히 첩첩산중이었다. 가대위는 조정위가 제시한 보상기준에 불만이 컸다. 삼성전자도 사단법인은 세울 수 없다고 맞섰다. 반올림은 보상기준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

결국 3자는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 대신 삼성전자가 가대위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반올림을 뺀 양자 간 합의가 이뤄졌다. 삼성이 낸 1000억 원을 재원으로 보상위원회를 꾸리자 금세 150명이 보상을 신청했다. 이 중 120명이 보상을 받았다. 합의가 이뤄진 사람들에겐 회사가 개별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가 제안했던 사과, 보상, 대책 중 2가지가 해결된 것이다. 마지막 ‘대책’에 대한 합의는 지난해 1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종합진단과 예방대책을 내놓을 외부 독립기구(옴부즈맨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해결됐다.

박 변호사는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갈등이 조정으로 해결된 첫 사례’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반올림을 끝까지 안고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감추지 못했다.

그는 “삼성 노조 설립을 주장하는 반올림을 설득할 때 ‘산재 문제는 산재로 끝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고 했다. 자신도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판에서 논의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노조 문제는 지금 삼성전자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라운드”라며 “과거의 산재 문제를 원동력 삼아 현재의 노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계기로 백혈병 이슈를 다시 제기하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가 일정을 미룬 상태다.

“정경유착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는 분명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걸 백혈병 이슈랑 엮으면 안 되죠. 사실상 풀린 매듭을 다시 묶는 건 이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온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는 “최순실 일가에겐 500억 원 가까이 주고 백혈병 피해자에겐 500만 원만 줬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위로금 중 일부로 500만 원을 준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이제 와서 500만 원을 부각해 비판하는 건 정치적인 의도성이 명백해 보인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한 언론이 500만 원만 지급했다고 보도하자 4일 자사 홈페이지에 “전혀 사실이 아니며 몇 차례에 걸쳐 지급된 치료비와 위로금 등의 증빙자료를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정작 자신의 첫 의뢰인인 유미 씨에 대한 보상과 협상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이 가장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그는 “이제까지 유미 씨 아버님이 고생을 가장 많이 했다. 유미 씨까지 잘 마무리되는 게 이 라운드의 진정한 끝”이라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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