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박이문 대신해 쓴 ‘박이문의 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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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환자복을 입고 영원한 부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류종렬 미다스북스 대표 문예지 글 “그는 한국 인문학에 핀 지성의 꽃”

“나는 지금 환자복을 입고 영원한 부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직업으로부터, 철학으로부터, 모든 물질적·사회적·관념적 속박과 구속으로부터는 물론 애착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최근 ‘문학사상’에는 ‘남기고 싶은 말―박이문을 대신하여’라는 특이한 형식의 글이 실렸다. 투병 중이라 글을 쓸 수 없는 ‘지성의 참모총장’ 박이문 포스텍 명예교수(87)를 대신해서 미다스북스 대표 류종렬 씨(51)가 쓴 글이다. 비록 ‘박 교수의 생각은 아마 이럴 것’이라고 짐작한 내용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 박 교수가 썼을 법한 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봐도 될 듯싶다.

“죄송스럽게도 첫 책에서 오탈자가 쏟아져 나와 가슴이 철렁했는데 교수님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류 씨가 20여 년 전 당대출판사 편집장으로 기획, 편집을 맡은 첫 책이 박 교수의 책이었다. 류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많은 ‘좌우의 지성인’을 만났지만 편집자로 박 교수님을 계속 뵈면서 ‘인격이 이렇게 훌륭한 분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님은 문학 철학 예술철학 환경철학 미학까지 인식론과 실존철학의 전 영역을 폭넓게 아우른 한국 인문학의 거장이면서 동서양 철학의 바탕 위에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해 독보적 업적을 내셨지요.”

미다스북스는 지난해 2월 박이문 인문학 전집(전 10권)을 냈다. 중소규모 출판사 경영자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1년 새 전집 초판(1000질)이 모두 나갔다. 미다스북스는 지난달 26일 박 교수의 88세 생일을 맞아 양장본이던 전집을 보급판으로 다시 냈다.

“박 교수님은 20세기 이래 현대철학의 화두인 현상과 실재, 존재와 의미 간의 변증법적 통일을 시도한 ‘둥지의 철학’을 창시했습니다. 한국 인문학의 척박한 토양에서 피어난 창조적 지성의 꽃이죠.”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이문#류종렬#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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