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진현]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묵시록적 성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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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가금류 3300만 마리 살상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
메르스 겪고도 교훈 못 얻은 대한민국은 ‘예방 실종의 사회’
생명안보에도 공짜는 없다 안전과 평화 중시하는 생각의 새 기준 창조해야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2016, 2017년에 걸쳐 대한민국은 역사적 기록을 만들고 있다. 이 땅에 조상들이 정착한 이후 최대의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하필이면 융성과 다산을 의미하는 붉은 닭의 정유년으로 이어진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닭과 오리 가금류 3300만 마리, 즉 국내에서 키우는 가금류의 25%를 도살처분하고 있다. 역사상 인간과 가축 모두 합쳐 이 땅에서의 최대 생명 도살이다. 게다가 2월 초부터는 구제역이 발생해 소의 도살처분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끔찍한 생명 살상에 대해 깊은 실존적 성찰, 자연 섭리의 배반에 대한 문명사적 반성을 해야 한다. 2011년 소 돼지 등 354만 마리, 2014년 가금류 1400만 마리가 도살된 데 이어 재작년 메르스 재난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부끄러운 ‘예방 실종’의 나라가 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사태’로 변질되고 ‘이것이 나라냐’ 하는 의문이 나왔다. 그때 ‘국가개조’란 말도 나왔다. 생명, 생명안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일깨우는 신호인데도 또 하나의 역사 기록인 단군 이래 최대 시민들의 광장 촛불과 맞불에 가려 있다. 지금 이 땅과 하늘을 배회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고다. 유교 전통의 나라에서 자살률, 존속살인율, 성형수술률이 세계 1등을 하는 것은 예사로운 징조가 아니다.

첫째 성찰은 현대 문명의 편리와 안락과 번영, 특히 안전은 끊임없이 비용을 지불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월호 같은 해양사고를 막으려면, 구제역과 AI를 막으려면 현재 정부와 소비자 기업 농가에서 지불하는 비용으로는 불가능하다. 덴마크 노르웨이 일본 정도의 안전기준과 관리를 하려 해도 그 실질 비용은 지금의 3, 4배는 더 높아야 한다. 축산사료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가축분뇨에 의한 환경 영향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종합 평가하면 이 땅에서 축산업이 가능한 것이냐는 근원적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

건축 전문가에 따르면 건물 도로 터널 등 인공구축물의 건설비용은 구축물의 유지, 수선, 관리, 폐기 비용의 2%에 불과하다. 일상의 관리 비용과 사회적 비용 98%를 들여야 그 편익을 안전하게 누릴 수 있다. 모든 사회활동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우리는 외형적 ‘건설’에만 매몰되어 유지, 관리, 안전 그리고 사회적 비용이라는 실질 비용을 무시하는 습관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땅이 좁은 한국은 인구 주택 도시화 도로 가축사육, 발전소(특히 원전)와 송·배전선의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밀도가 높을수록 안전사고 비용은 더 높기 마련인데 안전의식과 규칙 준수는 허무할 정도이니 그 종말은 너무도 자명하다. 공짜는 하늘에도 땅에도 없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다.

두 번째는 삶의 물리적 기본 조건인 생명자원, 즉 먹을거리와 에너지의 공급 조건에 대한 원천적 성찰이다. 자유무역을 부르짖는 서양의 선진국 치고 에너지와 먹을거리의 자급 없는 나라는 없다. 대부분 식량은 ‘잉여’이고 에너지도 잉여 또는 실질적 자급이다. 소득 수준으로는 선진국이면서 에너지의 90% 이상과 먹을거리(쌀 제외)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생명자원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선진국은 한국 일본뿐이다(싱가포르와 산유국 제외). 중국은 1990년대 초까지도 석유수출국이었으나 지금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며 쌀, 콩의 세계 최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AI의 원형이 중국이고 앞으로도 계속 중국발(發) AI의 발생을 예상할 수 있다. 어느덧 일기예보 때마다 미세먼지 농도를 알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앞으로 미국 러시아 일본에 이어 제4의 대원자력 재난이 발생한다면 중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은 생명자원 조건에서 공동운명체다. 생명안보, 즉 생명자원 공급, 생명안전, 생명평화를 기본으로 동북아 협력의 기준을 바꿔야겠다. 이 땅과 이 땅 주변 생명의 삶은 현대가 만들어낸 21세기 지구촌 인류 ‘문제군’의 중심이다. 근대, 현대에 늦게 참여했지만 근대, 현대가 만들어낸 안전, 환경, 지구온난화 문제군의 폭발 진원지는 바로 동북아시아다. 이제 생명 안전 안보 평화에 관한 어제의 상식과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준을 세워야 한다. 번영과 풍요가 아니라 생존의 안전과 평화라는 새 기준, 삶의 양식과 생각의 기준, 국가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2016, 2017년의 묵시록적 기록들, 생명도살과 촛불의 역사적 기록의 계시는 대한민국이 근대, 현대를 넘는 새 기준을 창조하라는 것이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메르스#ai#예방 실종의 사회#생명안보#생명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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