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전승민]전략과 철학이 없는 한국 과학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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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정부가 15일 정부서울청사 본관에서 진행한 ‘과학기술전략회의 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결과를 놓고 과학계 구성원들 사이에 적잖은 불평이 감지된다. 정부는 이날 “정보통신기술(ICT)을 전통산업에 접목하겠다. 모든 생산 과정을 자동화한 스마트 공장 건설을 대폭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회의 결과는 ‘과학은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과학기술전략회의는 과학기술 발전 전략 수립과 주요 정책 조정을 위한 대통령 소속 전략회의로, 대통령(현 황교안 권한대행)이 직접 의장을 맡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역시 과학기술 정책 결정을 위한 대통령 자문역 수행이 목적이다. 둘 다 행정수반이 국내 과학기술계를 끌어나가기 위한 최상위 의사결정 회의다. 두 회의를 동시에 진행한 자리에서 결정한 내용이라면, 사실상 국내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이 결정됐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이날 발표된 회의 자료를 살펴보니 산업계 최신 트렌드로 꼽히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기 위한 고심이 엿보였다. 과학기술과 정보기술로 산업 활력 제고, 창업·혁신 가속화, 미래대비 성장동력 확충의 3대 전략도 꼽았다.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니 제품 생산과 관련된 전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 공장을 적극적으로 건립해 나가는 한편, 인공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신기술의 핵심 요소인 ‘빅데이터’ 연구개발을 총괄 지휘할 컨트롤타워도 만들 계획이다. 자율주행차 등 가까운 미래에 주목받게 될 첨단기술 연구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결국 이번 회의 내용은 3대 핵심 중점 전략이 모두 ‘산업화의 실질적 수행역량 확보’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회의 결과를 놓고 국가의 장기적 과학기술 전략이라기보단 ‘산업 전략’에 가깝다고 느끼는 까닭이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과학기술에 투자한다. 이 때문에 경제적 효용 가치가 큰 분야에 우선 투자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일견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적 가치가 큰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것과, 산업 그 자체를 육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3대 전략 중 하나로 꼽은 ‘창업환경 개선’ 등을 과연 국가가 세워야 할 장기적 과학기술 전략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 책임연구원은 이번 회의 결과를 놓고 “과학 전략은 사라지고 산업 활성화 정책만이 남았다”고 했다.

시점을 과학기술의 산업적 가치, 그 한 가지로만 맞춰 본다 해도 이번 회의 결과에 아쉬움을 금하기는 어렵다. 막대한 산업적 성과가 예상되는 수많은 과학기술 분야를 육성하려는 의지조차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미국에선 특허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유전자 교정기술 분야는 우리나라 연구진도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전략회의에서 이 분야 연구를 지원해 세계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은 찾을 수 없었다. 첨단 ICT 제품개발에 필수적인 신소재 연구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고성능 로봇기술 연구개발 계획도 모두 언급되지 않았다. 장기적이고 선도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는 제외되고, 당장 산업화에 필요한 분야만이 거론되는 상황. 정부가 과학계에 원하는 것은 연구개발 역량일까, 아니면 산업화 실적일까.

과학기술은 산업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급변하는 세계적 기술 흐름에 부합하고자 당장 효율 높은 분야에 집중하려는 다급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만의 핵심 역량을 갈고닦는 일을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다. 급변하는 기술 흐름을 단순히 쫓아가는 것이 아닌, 세계시장을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준비가 필요한 때다. 혁신적인 연구개발 역량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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