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내가 청년 리더]메스 내려놓고 ‘와인 앱’ 개발한 낭만닥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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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정보 SNS ‘테이스팅앨범’ 만든 김정빈 대표

김정빈 테이스팅앨범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테이스팅앨범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소비자들이 쉽고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와인 정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테이스팅앨범을 창업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정빈 테이스팅앨범 대표가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테이스팅앨범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소비자들이 쉽고 편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와인 정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테이스팅앨범을 창업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국에서 와인은 아직 다가서기 어려운 고급술로 인식되잖아요. 막상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식사할 때도 대화할 때도 함께 즐기는 소통의 수단인데 말이죠.”

와인 정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테이스팅앨범’의 김정빈 대표(32)는 7일 창업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소비자들이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테이스팅앨범에선 자신이 마신 와인의 △과일(향) △산도(신맛) △타닌(떫은맛) △알코올(도수) △보디(맛의 경중) 등에 대해 별점을 매기고 시음 노트를 남길 수 있다. 마셔 보지 않은 와인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한 뒤 라벨 사진만 찍어 인식시키면 상세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볼 수 있다. 생소한 와인이라도 본인이 남긴 시음 노트를 기반으로 ‘예상 별점(호감도)’을 받을 수 있다. ‘팔로’ ‘좋아요’ ‘댓글’ ‘해시태그’ 등을 통한 소통은 덤이다.

○ 와인에 매력 느껴 창업 나선 의사

김 대표가 와인의 매력에 눈을 뜬 건 2015년 여름이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권유로 와인 숍을 찾았다가 다채로운 맛과 풍부한 스토리에 푹 빠졌다.

‘그동안 내가 알던 와인과 다른 세계구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2, 3회씩 와인을 마셨다. 가격에 비해 맛이 좋은 와인은 박스 단위로 구매했다. ‘왜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와인 맛이 다를까?’ 맛의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지 궁금했다. 급기야는 와인레스토랑에서 소규모 스터디를 하고,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와인 전문가 인증 과정 ‘WSET’ 1, 2를 수료했다.

와인 SNS를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은 와인 바에서 시작됐다. 친구와 함께 여러 술을 한 잔씩 모아놓고 마신 뒤 메뉴판을 보며 이름을 맞히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술 맛은 제각기 달랐지만 메뉴판에 이름만 써 있고 상세한 정보가 없으니 맞히기가 힘들었다. 답답했다. 어느 술집에 가더라도 다양한 술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얻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친구와 창업 준비에 돌입했다. 사업 기획서를 쓸 줄도, 앱 개발이나 디자인을 할 줄도 몰랐다. 매일 퇴근 후 서울 강남의 24시간 카페에 앉아 A4 용지에 그림을 그려 가며 앱을 설계했다.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왜곡될 수 있었다. 온·오프라인 연계(O2O·Online to Offline) 업계에서는 여러 사람이 직접 만드는 정보의 가치가 높다고 했다. SNS 형식의 앱을 만들어 편리하면서도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와인 정보를 제공하자고 결심했다.

수십 차례 면접을 본 끝에 앱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섭외했다. 그해 11월 정식으로 법인을 설립했고, 지난해 5월 성형외과를 나와 창업에 전념했다. 지난해 9월 앱 베타버전이 출시됐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입자가 늘어났다. 이달 초 기준으로 테이스팅앨범 앱 가입자는 3500여 명, 페이스북 팔로어는 3800여 명에 이른다.

○ “커피처럼 와인 즐기는 문화 만들 것”

투자 유치를 위해 발표할 때 투자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의사라는 직업은 경제적인 수입도 높고 언제든지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 않나요? 대표의 자세가 절박하지 않을 것 아닌가요?”

김 대표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반문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의사가 창업가보다 더욱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렇다면 최소한 현재 이 순간만큼은 투자자님이나 혹은 의사가 아닌 다른 어떤 창업가보다도 저는 더 많은 가치를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더 절박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테이스팅앨범은 지난해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게임오브디캠프(GoD) 1기로 선정됐다. 롯데그룹의 창업보육 전문 법인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엘캠프(L-Camp)’ 2기에도 들어갔다. 그 덕에 사무 공간 무료 이용 등의 도움을 받게 됐다. 에인절투자자와 롯데액셀러레이터 등으로부터 총 1억2000만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테이스팅앨범은 올 상반기(1∼6월) 중 O2O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온라인에서는 앱을 통해 개인별 추천 와인과 이를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 정보를 제공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매장에서 앱으로 와인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카페를 여는 게 목표다. 소비자들이 앱을 통해 맞춤형 메뉴를 추천받고 앉은 자리에서 주문도 할 수 있는 카페다. 커피를 마시듯 누구나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을 꿈꾼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와인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공간”이다.

“한 골목에도 서너 개씩 카페가 자리 잡기까지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잔의 와인과 함께 영화, 책, 음악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어요.”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와인#김정빈#sns#테이스팅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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