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구 파괴하는 유일한 種, 인류가 사라진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인간 이후/마이클 테너슨 지음·이한음 옮김/408쪽·2만 원·쌤앤파커스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최근 20만 년간 지구의 지배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구에 동물이 출현한 6억 년 동안 각 시대의 지배자들은 ‘대량 멸종’을 겪으며 지금은 모두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쌤앤파커스 제공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최근 20만 년간 지구의 지배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구에 동물이 출현한 6억 년 동안 각 시대의 지배자들은 ‘대량 멸종’을 겪으며 지금은 모두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쌤앤파커스 제공
“무(無)로 돌아가. 그게 너의 운명이야.”

지난달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에서 삼신할매(이엘 분)가 삶을 더 연장하려는 도깨비(공유 분)에게 내뱉은 말이다. 도깨비만이 아니다. 100세까지 수명이 늘어났더라도 인간 역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운명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운명은 무엇일까. 결국 무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선뜻 이 물음에 답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류가 결국 멸종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없어질 운명이라고.

저자인 마이클 테너슨은 사이언스 등 유명 과학 잡지에 300편이 넘는 글을 써 온 미국의 과학 전문 저술가다. 그는 ‘모험 과학(adventure science)’의 선구자로 불린다. 칠레와 페루의 안데스 산맥을 탐험해 지구 온난화 과정을 증명해 내고, 해양 환경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하와이 섬 근처에서 혹등고래 번식지를 찾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인류의 탄생과 번성, 그리고 소멸까지. 운명적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우선 저자는 미국 텍사스 주의 가장 높은 산맥인 과달루페 국립공원에서 찾아낸 ‘캐피탄 리프’ 화석을 통해 그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의 멸종사를 설명한다. 동물이 지구에 처음 출연한 것은 6억 년 전이다. 이 기간에 동식물 종의 75%가 사라지는 ‘대량 멸종’ 사태는 총 5번 발생했다. 시베리아 화산 분출이 만들어 낸 2억5200만 년 전 ‘페름기 사건’부터 소행성 충돌로 생긴 6500만 년 전 ‘백악기 사건’까지. 영원할 것 같던 지배자들은 지금 모두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문명을 이룩한 인간은 다를 것이다.’ 문득 책을 읽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의 ‘황폐화 능력’에 주목한다. 호주 대륙에 인류가 들어간 것은 고작 4만 년 전이지만 이 사이 대형 포유동물 85% 이상이 멸종했다. 조류독감 에볼라 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수억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치명적인 질병이 인간의 번성 이후 생겨났다.

오히려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모든 동식물에 이롭다. 2011년 대지진 이후 발생한 원전 사고로 인해 버려진 땅이 된 일본의 후쿠시마. 인간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됐지만 이제는 야생 동물의 천국이 됐다. 총 폭탄 방사성폐기물 등 자연을 파괴한다고 여겨진 수많은 요소보다 더 큰 해를 끼친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래도 발전하는 과학에 답이 있겠지…”라는 희망 역시 뭉개 버린다. 화성 탐사나 인공 지능(AI)은 엄청난 예산과 관심을 투입해야 하지만 현 인류가 대안으로 내세우기에는 발전 단계가 너무 낮다고 일축한다.

읽고 나면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주인처럼 행세하면 안 된다’는 오래된 교훈이 느껴진다.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인류라는 두꺼운 담요가 걷히면, 자연은 크나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애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간 이후#마이클 테너슨#대형 포유동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