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학생 美취업 門 좁아져… 기업 주재원 파견도 차질 빚을듯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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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취업-투자이민 비자 제한 추진

 지난해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이공계 석사 학위를 마친 뒤 현지에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잡은 A 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 ‘H-1B’ 심사 기준을 깐깐하게 바꾼다는 소문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졸업 후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비자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를 발급받아 미국에 머물고 있지만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된 뒤 다른 비자를 받지 못하면 불법 이민자가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특정 지역 출신이거나 특정 종교를 가진 외국인 유입을 막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전문직 외국인 인재를 취업비자 제도 개혁으로 옥죄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불법 체류자가 아닌데도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 봐 불안한 한국인도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개편할 것으로 예상되는 H-1B는 현재 추첨을 통해 매년 약 8만5000건이 발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신청자가 발급 쿼터의 3배를 넘을 정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세계 인재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티켓이다. 미국 기업은 H-1B를 발급받은 외국인 직원을 고용해 쓰다 실력이 입증되면 영주권 취득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이 비자가 외국인들에겐 영주권 취득을 향한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한국인의 비자 허가 비율은 인도, 중국, 캐나다, 필리핀에 이어 5위다.

 현지에서 예상되는 H-1B 개편 방향은 발급 심사 기준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 기업들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채용을 줄이기가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뉴저지에서 활동하는 류지현 송로펌 변호사는 “미 정부는 기업들이 외국인을 채용하기 전에 자국민을 채용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 철저히 따질 수 있다.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외국인 채용을 꺼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법인 주재원 관리도 강화될 예정이다. CNN머니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6개월 안에 기업 주재원 비자인 ‘L-1’을 발급받는 외국인을 직접 방문 조사해 불법 발급 여부를 확인하고 2년 내에 방문 조사 대상을 모든 취업 비자 소지자로 확대할 예정이다.

 투자 이민 규모도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투자 이민 비자인 ‘EB-5’의 신청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 이민국(USCIS)에 따르면 고용 촉진 지역에 적용되는 EB-5의 최소 투자금은 50만 달러(약 5억8500만 원)에서 135만 달러로 상향됐다. 이 제도 이용자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31일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변경으로 생긴 횃불로 지구촌 곳곳에 화재가 번지고 있다. 중국계 주민들에게도 불이 옮아붙었다”라고 보도했다. 화교 이민 전문가 팡페이(龐飛) 변호사는 “투자 금액을 대폭 인상한 것은 매우 의외”라며 “투자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J-1 비자 프로그램도 폐지 위기에 놓였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44명을 포함한 1만2000여 명의 세계 과학 연구자들은 “과학 연구를 선도하는 미국의 리더십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공동성명서를 내놨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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