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밤→배→감? 차례상 과일, 종류-순서 따로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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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가 전하는 진설법의 진실

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는 차례상에 놓일 과일의 종류나 순서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 박사는 “대추 밤 감 배 등 차례상의 과일 종류와 순서는 비교적 근래 정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는 차례상에 놓일 과일의 종류나 순서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김 박사는 “대추 밤 감 배 등 차례상의 과일 종류와 순서는 비교적 근래 정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가 맞아, 조율시이가 맞아?” 하루 지나면 설이다.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차례상이지만 그 앞에서는 심심찮게 진설(陳設·제사 때 법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것)법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논쟁이 벌어진다. 가가례(家家禮)라고 해 ‘도랑을 건너면 다르다’는 게 진설법이다. 그중 가장 의견이 분분한 게 차리는 사람 입장에서 제일 앞줄인 ‘과(果)’다. 》
 
 어떤 집은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놓지만 어떤 집은 감과 배가 바뀌고, 기타 과일을 그 뒤에 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대추-밤과 배-감 사이에 잡과를 놓는 집도 있다. 물론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음)를 따르기도 한다. 국가장에 조언하기도 했던 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55·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로부터 차례상 차림에 관한 얘기를 20일 들어봤다.

 “과 줄을 순서대로 조율시이로 쓴 가장 오래된 기록은 언제 것일까요? 16세기? 18세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최고(最古)는 겨우 1919년 것이에요.”

 김 박사는 지난해 ‘국학연구’에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기록은 경북 경산의 유학자 정기연 선생(1877∼1952)이 1919년 놀이로 진설법을 익히도록 창안한 습례국(習禮局)의 진설도다.

 그럼 조선의 유학자들이 펴낸 수많은 예서(禮書)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고려 말 들어온 주자의 ‘가례(家禮)’ 이후 모든 예서가 ‘과, 과, 과, 과’입니다. 과일을 6종류 또는 4종류 올린다고 돼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일을 놓아야 할지 정하진 않았다는 얘기예요. 조선 후기 학파와 무관하게 사용된 예서 사례편람(四禮便覽)도 마찬가지죠.”

조율시이가 기록(점선)된 습례국 진설도다. 1919년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조율시이가 기록(점선)된 습례국 진설도다. 1919년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김 박사는 “19세기 중반 쓰인 ‘금곡선생 문집’에 집안 제사에 조율시이를 차린다고 나오지만 이게 늘어놓는 순서는 아니다”며 “이전까지는 이것저것 집에 있는 과일로 차리다가 19세기 들어 이 4종류 과일이 제사상, 차례상 차림으로 정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단지 조선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대추, 밤, 감의 특징이 뭘까요. 말리거나 묻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벽장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과일을 차린 거지요.”

 좌포우해(左脯右해)니 두서미동(頭西尾東)이니 하는 방식이 집집마다 퍼진 것은 오히려 1970년대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김 박사는 본다. “1960년대부터 학자들이 전국을 돌며 제사 상차림을 조사했어요. ‘집안에 이러이러한 차림법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없어도 이후로는 그렇게 차릴 수 있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조사자로부터 ‘역전파’가 된 거죠.”

 김 박사는 “주자의 가례도 기존 중국 예서의 논리를 과감히 뒤집은 책”이라며 “복잡한 진설법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리된 음식을 사서 차례상에 올려도 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조선시대 종부(宗婦)들이라고 다 직접 음식을 했을까요? 하인들이 다 했죠. 음식을 주문해서 상에 올리는 것도 정성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율시이#진설법#홍동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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