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donga.com

[新 명인열전]양복에 구두 신고 100km 질주… “울트라마라톤은 편견 깨는 무대죠”
더보기

[新 명인열전]양복에 구두 신고 100km 질주… “울트라마라톤은 편견 깨는 무대죠”

정승호기자 입력 2017-01-23 03:00수정 2017-01-23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68> 울트라마라토너 정재종 씨
지난해 11월 KEB하나은행 열린교육원에서 스마트 홍보대사를 상대로 강연을 하고 정재종 씨. 정 씨는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청춘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정재종 씨 제공
 지난해 3월 26일 오후 세종시 조치원읍 인라인스케이트장 광장. 제5회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 대회는 충남 공주를 거쳐 부여까지 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100km 구간을 밤새 뛰는 경기다. 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마라토너 60여 명 중 양복 정장과 구두, 서류가방을 든 20대 청년이 눈에 띄었다. 다른 선수들은 그를 보고 “어! 진짜 선수 맞아?”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걸 입고 100km를 뛴다고…”, “퇴근하고 왔나 보네”라며 쑥덕이는 소리도 있었다.

 그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출발했다. 양복과 와이셔츠는 금세 땀에 젖었다. 딱딱한 구두 탓에 다른 선수들보다 빨리 뛰지 못했지만 14시간여 만에 100km를 완주했다.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골인한 그를 보고 대회 관계자들과 선수들은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5개월 후 영국에서 열린 50km 솔즈베리산악마라톤에 도전했다. 이때도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참가했다. 제한시간이 10시간이었지만 7시간 25분 만에 완주했다. 이 대회 ‘히어로’도 물론 그였다.

○ 정장 차림의 울트라마라토너

정재종 씨가 지난해 3월 출전한 제5회 세종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정장 차림으로 골인하고 있다.
 “마라톤 선수는 으레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싣고 뛴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재종 씨(29·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4년)에게 울트라마라톤은 사회적 편견을 깨는 퍼포먼스이자 새로운 도전의 무대다. 정 씨는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어 양복과 구두를 신고 두 대회에 출전했다.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정장과 구두를 선물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었다. 세종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뒤 국내 정장회사와 구두 제조회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발송한 지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각 회사에서는 앞으로 스폰서를 해주겠다고 했으나 정 씨는 양복 4벌과 구두 5켤레만 받겠다고 했다. 이 옷과 구두를 친구 3명에게 선물했다. 둘은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만난 친구였고 한 명은 대학 동기였다.

 울트라마라톤은 일반 마라톤 풀코스(42.195km)의 두 배를 넘는 100km 이상의 거리를 뛰는, 엄청난 체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스포츠다. 2013년 울트라마라톤에 입문한 이래 13번 대회에 출전해 10번 완주했다. 2014년 한 해에만 부산비치울트라마라톤(100km), 세종울트라마라톤(100km), 대구성지순례울트라마라톤(100km), 울트라마라톤선수권대회(100km) 등 4개 대회에 나가 끝까지 뛰었다. 2015년에는 프랑스 몽드빌울트라마라톤(91km), 포르투갈 미란다도코보울트라마라톤(112km)을 완주했다. 일반 마라톤 풀코스 4차례를 비롯해 스파르탄레이스(5km+장애물), 철인3종경기의 일종인 아쿠아슬론(마라톤 10km+수영 1.5km) 대회에도 출전해 철각을 과시했다.

 그가 지금까지 뛴 거리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계산을 해보지 않았지만 2200km는 넘을 거예요. 2014년에만 604.875km를 뛰었으니까요. 뛰다가 도중에 탈락한 대회까지 합치면 아마 그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관련기사

 정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2014년 10월에 출전한 브라질 아마존 정글레이스를 꼽았다. 총 10일간(정글트레이닝 3일·레이스 7일) 290km 구간을 달리는 정글레이스에는 전 세계에서 51명이 참가했다. 식량, 의복, 생존에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정해진 구간을 뛰는 세계 최고 난도의 오지(奧地) 레이스다. 물은 매일 오전에만 각 체크포인트에서 공급했다. 매 구간 강을 건너고 늪지대를 헤치며 각종 벌레와 싸웠다. 뱀, 아나콘다, 재규어 등 위험한 동물을 피해 가며 극한 환경의 아마존을 달려 한국인으로는 5번째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 국제안보 전문가가 꿈

 어릴 적 천식을 앓았던 정 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했다. 마라톤은 특전사 군 복무 중 간부를 통해 처음 접했다. 마라톤 마니아인 그와 함께 뛰며 달리는 즐거움을 알게 돼 제대 후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달리는 즐거움은 달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70km 정도 달리면 다리 통증도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완주했을 때 얻는 성취감은 물론이고 끈기까지 키울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스포츠가 없죠.”

 국내외 울트라마라톤대회를 참가하려면 경비가 적지 않게 들지만 그는 부모에게 거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죠. 저의 블로그를 보고 강연을 해달라는 곳도 있어요. 그동안 20차례 강연을 했는데 저한테는 큰 수입원입니다. 대한민국 인재상(2015년)에 선정돼 받은 상금(300만 원)도 도움이 됐어요. 세 살 터울의 누나(공무원)도 든든한 후원자고요.”

 그는 2013년 1년 6개월을 휴학하고 40여 개국을 여행했다. 여행 경비는 현지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식당과 청소회사에서 일하면서 벌었다. 어학연수를 1년 한 프랑스에서는 우리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반성하며 베를린 한복판에 거대한 위령비를 만들었고 유대인박물관을 세워 전 세계에 사죄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사죄는커녕 죄의식도 없잖아요. 그래서 거리로 나섰죠.”

 그는 프랑스와 벨기에, 브라질 등지에서 현지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거리에 패널을 놓고 스티커를 붙이도록 하는 이벤트도 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일본군 만행을 알려주는 홍보물을 나눠주면 사실이 아닐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힘써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진실 알리기’라고 쓴 깃발을 배낭에 꽂고 16일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달렸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젊은 지성인의 역사에 대한 고민이 담겼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그곳에서 만난 여행객들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격려를 해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 8월 대학을 졸업하는 그의 꿈은 국제안보 전문가다. 외국을 두루 여행한 것도 이런 꿈을 실현하고 싶어서다. “전 세계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에서는 지금도 정치·종교적인 이유로 내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을 찾아가 평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날을 꿈꾸며 계속 달리겠습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