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취향… 단돈 몇천원으로 즐기는 소소한 사치와 여유로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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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싸고 부담없는 놀이-식도락, 불황기 새 트렌드 떠올라

《#1 “오빠, 인형 하나 뽑아줘.”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인형뽑기 가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5분여 동안 기계를 붙잡고 있었다. 약 5000원을 쓰고 나서 인형 하나를 뽑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은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2 “딱 한 곡만 더 부르고 가자.” 같은 날 서울 마포구 홍익대 부근의 코인노래방. 늦은 오후 시간에도 7개의 방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음료수 무제한 서비스에 노래 네 곡 부르는 데 1000원에 불과했다. 일행은 1인당 네 곡씩 부르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최근 1만 원 이하로 사거나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취향’이 유행이다. 인형뽑기 가게, 코인 노래방, 편의점 커피(위부터) 등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최근 1만 원 이하로 사거나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취향’이 유행이다. 인형뽑기 가게, 코인 노래방, 편의점 커피(위부터) 등의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불경기 속에 ‘가난한 취향’이 유행 중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개인의 취향은 포기하기 힘들다. 요즘 길거리 곳곳에서는 500∼5000원이면 즐길 수 있는 오락이나 아이템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반짝 인기를 얻었던 인형뽑기 가게는 최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전국에 영업 중인 인형뽑기 가게가 157곳이었는데 10월에는 415곳으로 3배가량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인형뽑기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즐기고 있다. 현행법상 소매가 5000원 이하의 경품만 취급할 수 있어 대부분의 인형은 정품이 아니다. 한 대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1000원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가짜든 진짜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코인노래방도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다. 500원으로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 노래방 관계자는 “1시간에 1만 원이 넘는 기존 노래방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코인노래방이 너무 많이 생겨 경쟁도 심하다”고 했다.

 가격이 싼 먹을거리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커피전문점의 커피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1000원 정도인 편의점 커피를 많이 찾는다. 편의점업체 씨유(CU)에 따르면 즉석 원두커피의 전년 대비 매출은 2014년 32%, 2015년 41%, 2016년 67%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 매출도 전년 대비 2015년 65.8%, 2016년 168.3% 증가했다.

 디저트 카페가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케이크를 구매할 수 있는 마트도 가난한 취향을 즐기기에 부담 없다. 이마트에 따르면 약 1만6000원인 치즈케이크는 지난해 매출이 24.6% 올랐다.

 크게 필요 없을 것 같은 자질구레한 상품으로 소소한 사치를 즐기는 ‘탕진잼’(탕진과 재미를 결합한 단어)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한 직장인은 “1만 원밖에 없어도 1000원짜리 수첩이나 볼펜은 몇 개씩 구매할 수 있다. 정해진 한도 내에서라도 마음껏 구매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했다.

 가난한 취향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헌기 문화평론가는 “경제난은 물론이고 사회적 분위기까지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요즘 1만 원 이하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홀로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취향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며 “자기 만족감과 소비 기준을 계속 낮춰야만 하는 세태가 씁쓸하다”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인형뽑기#코인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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