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핵심판 불출석한 朴 대통령, 헌재 권위 무시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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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예상대로 탄핵심판정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 오후 2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은 박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9분 만에 끝났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돼 헌법이 상정하는 통치구조에 변동을 초래하는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다”며 “대공지정(大公至正·매우 공평하고 지극히 올바름)의 자세로 엄격하고 공정하게 최선의 심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대통령에게 5일 출석할 기회를 더 줬지만 변호인들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불출석 전례를 들먹였다. 앞으로도 나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었다. 노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은 당사자의 소명이 없어도 재판관들의 판단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 걸린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는 9가지나 된다. 박 대통령 대리인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세월호 7시간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 외에는 진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박 대통령이 심판정에 직접 출석해 소명해야 하는 이유다.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 측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의 발언에 비선 실세 최순실 씨를 지원한 정황이 들어있다고 보고 기자간담회 전문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심판정 밖에서 자기변호를 하고 있다. 신년 간담회에서 “(뇌물죄 의혹은)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심판정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헌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근무하는 대한항공 지점장의 인사 문제까지 부탁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사법기관에서 박 대통령의 죄를 지목하는데, 대통령 혼자 나는 아니라고 여론전을 펼쳐서야 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법사위원장으로 국회 측 소추위원이었던 김기춘 의원은 “대통령의 불출석은 헌재의 권위와 국민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의 말은 부메랑이 되어 박 대통령에게 돌아왔다. ‘최순실 없는 국정조사’에 이어 ‘박근혜 없는 탄핵심판’이 돼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장외 여론전을 펼칠 게 아니라 심판정에 나와 법리 공방을 벌여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마지막 기대에 답하는 길이다.
#노무현#탄핵심판#박근혜#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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