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농담보다 현실이 더 농담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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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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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단편소설

김홍 씨
 이 소설은 여름에 썼다. 야구를 많이 봤고 더워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30연패를 하지만 실제로는 연승도 하고 꽤 괜찮은 시즌이었다. 좀 덥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여름이었다. 여름까진 괜찮았던 것 같다. 정부가 농담처럼 그만두는 부분을 쓰고 ‘거 농담도 참’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농담보다 현실이 더 농담 같다. 앞으로 뭘 써야 될지 막막해지는 기분이다.

 밤늦게 글을 쓰다가 기분이 이상해질 때가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왜 계속 쓰고 있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하다 보면 내 자신이 낯설어진다. 그럼 낯선 사람과 동행하는 기분으로 또 쓴다. 하루하루가 엄청나게 긴데 그날그날 뭘 했는지 생각하면 하나도 모르겠다 싶은 때도 있다. 그러면 또 시간을 지울 요량으로 쓴다. 열심히 써서 언젠가는 읽는 사람을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사람처럼 만드는 소설을 쓰고 싶다.

 지금은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가 다 끝난 줄 알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예약한 후 이틀 뒤에 당선 연락을 받았다. 다섯 살에 한라산을 오르다가 무섭다고 울어서 업혀 내려왔다. 이번에는 꼭 끝까지 가려고 한다. 1년에 50일만 열린다는 백록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안개만 보고 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일도 막막함투성이라 이상하지 않다.

 길이 되고 용기가 돼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덜 된 글을 군말 없이 봐준 지원, 윤주 님과 ‘뫙’ 친구들에게 고맙다. 이상한 아들 남보다 오래 키우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1986년 서울 출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수료
 
▼ 엉뚱함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화법 빛나 ▼
 
[심사평]단편소설
 
오정희 씨(왼쪽)와 성석제 씨.
오정희 씨(왼쪽)와 성석제 씨.
 본심으로 넘어온 9편의 작품은 상당한 수준의 성취를 보였다. 소재도 다양해서 서로 겹치는 게 없었다. ‘사라진 볼트에 관한 인터뷰’는 노동 현장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다. 기자를 화자로 내세웠는데,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기자에게 어울리지 않게 주관적인 해석이 나타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도 절대인 것’은 북한에서 온 소녀와 만나는 어린 유학생을 다룬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차분하지만, 개인적인 기억일 뿐 독자와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볼셰비키가 왔다’는 근래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착상이 기발하고 전개는 거침없이 활달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일상적으로 쓰는 속어가 여과 없이 소설의 ‘문장’으로 들어온 것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당선작인 ‘어쨌든 하루하루’는 느릿하고 완숙한 화법을 구사한다. 달 탐사 프로젝트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설정부터 엉뚱하지만, 치밀한 세부의 부연으로 그 엉뚱함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뀌고 독자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작금의 정치적 상황, 삼류소설을 무색하게 하는 황당한 국면 전개를 통렬하게 풍자한다는 점이 빛난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분들의 분발을 바란다.
 
오정희·성석제 소설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단편소설#어쨌든 하루하루#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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