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무덤이 조금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중편소설 당선작] <줄거리> 위수정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1. 머리가 파란 새, 인영

 8월이었지만 런던의 여름은 서울에 비해 무척 선선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찾아온 노고와 입장료가 아까워 산책이라도 할 요량으로 묘지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진욱은 유독 사진 찍는 걸 꺼려서 내가 카메라를 꺼내들면 먼저 앞서 가버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에는 주로 그의 뒷모습만 담겨 있었다. 청바지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힘없는 걸음걸이, 뒷덜미에 띄엄띄엄 자라나는 흰머리와 어깨뼈가 도드라진 마른 등이 새삼스러웠다.

 진욱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벗어나 잡풀이 무성한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우리는 베티 스미스의 묘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묘지에 각인된 여자의 얼굴이, 나중에는 배우라는 직업이 눈길을 끌었다.

 진욱은 가방에서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어 비석 앞 수풀 위에 깔았다. 주위는 고요했고 간혹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새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새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렸다. 진욱은 바닥에 깐 점퍼 위에 앉았다. 나는 이만 나가자고 했지만 진욱은 지금 너무 피곤하다며 잠깐만 쉬자고 했다. 내가 앉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여기에 이러고 있어도 돼? 내가 물었다. 왜 누가 안 된대? 아니, 땅 속에 죽은 사람들이 있잖아. 내가 작게 말하자 그는 웃으며 너무 옛날에 죽은 사람들이라 이제 흙이나 똑같다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는 일 년 새 얼굴이 핼쑥해져서 원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진욱의 손이 내 볼을 쓰다듬었다. 너도 누워 봐. 달라. 나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가 잠시 뒤에 그의 옆에 누웠다. 허벅지를 누르고 있던 그의 머리를 치우자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의 말대로 앉아 있을 때와는 풍경이 무척 다르게 보였다. 들꽃들이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길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들과 햇빛이 닿은 초록의 이파리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등에 닿는 흙바닥의 서늘한 기운도 싫지 않았다. 앉아서는 도통 찾을 수 없던 새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이 비석 앞에 검은 상복을 입은 이들이 모여 애도했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비통한 표정의 하객들과 관 위에 뿌려지는 흙. 백 년 전의 장례식이 있던 날,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고개를 숙였고 레이스 장갑을 낀 여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그들이 슬픔에 찬 표정으로 보고 있는 비석 앞에 우리는 지금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날이 오늘과 겹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의 아시아 커플이 어느 날 당신의 묘지에서 쉬어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녀의 관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장례식이 끝난 후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서로의 표정을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내일의 계획을 말하며 사야 할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늘 장례식은 벌써 오래전 일 같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며 서로를 껴안고.

 우리는 백 년 전 죽은 여배우에 대해 건성으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러다 진욱이 한동안 말이 없어 살펴보니 잠이 들어 있었다. 여독이 겹친 데다 가끔씩 얼굴에 닿는 기분 좋은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강했을 때 진욱은 바닥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투병을 시작한 이후로는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종종 잠을 설쳤다. 일 년 남짓한 사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를 바로 깨우기가 뭣해서 잠깐만 쉬게 두기로 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렇게 우는 새도 있었나? 시간이 지나면 관리인이 우리를 내쫓을 텐데. 이제 그만 진욱을 깨워야지. 그런데 내 눈앞에 새가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몸은 온통 검은데 머리 부분만 사파이어처럼 차갑고 쨍한 파란색 털로 덮여 있었다. 새는 작고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간혹 부리를 벌려 또로로로 소리를 냈는데 그럴 때마다 새의 붉은 혓바닥이 빠르게 떨렸다. 새가 웃었다. 새가 웃을 수도 있나?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뿐인데 새는 또로로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바라보며 또 웃었다. 한다는 생각이 죄다 병신 같군. 새는 매끄러운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어? 새가 말도 할 줄 아네? 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you belong to here. 새는 이제 영어로 말했다. 나는 새의 파란 깃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이 부시도록 차갑고 깊은 파란색.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될까? 나의 손가락이 새의 보드랍고 작은 머리에 닿으려 했다. you don't belong to here. 그 작은 머리에 그 새파란 깃털에 닿은 것 같았는데. 분명히 닿았는데, 진욱이 내 이름을 불렀다. 몸을 일으켜 보니 눈앞에는 중년의 백인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새를 찾아보았다. 꿈이 아닌 것만 같아서.

 남자는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묵직한 수동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우리 자는 모습을 찍었대. 그리고 깰 때까지 기다렸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 셔터 소리에 내가 먼저 깼으니까. 바닥에 깔았던 옷을 털어 접으며 진욱은 내게 띄엄띄엄 말했다. 남자는 50대 후반쯤으로 보였고 팔을 걷어 올린 자주색 셔츠가 잘 어울렸다. 그는 어리둥절한 내 표정 때문인지 몇 번이나 사과했다. 자신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름이 뭐예요? 생각나는 영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대뜸 물어보았다.

 자신을 헨리라고 소개한 남자는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연한 푸른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음울해 보였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짐짓 놀란 어조로 말했다. 어쩌지? 폐장 시간이 훨씬 지났어.

2. 사라진 고양이, 진욱

 좁은 미니 뒷좌석에 앉아 인영은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 인영의 눈에는 반짝 생기가 돌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인영의 그 눈빛이 불편했다. 나는 한여름 스러져가는 오후의 냄새를 크게 들이마셨다. 생전 처음 오는 곳인데도 그 냄새는 너무 익숙했다. 아련하면서도 불안한 냄새. 저 멀리로 붉다 못해 검게 보이는 장미꽃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꽃 덤불이 살짝 흔들렸다. 그 사이로 누런 빛깔의 자그마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봤지? 인영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허리를 굽힌 채 풀린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굽힌 허리로 팬티 윗부분이 보였다. 헨리를 바라보자 그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인영은 회사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누런 빛깔의 고양이였다. 새끼도 아니고 성묘도 아닌 어중간한 크기였다. 인영의 회사 창고에 들어와 있었고 장마철인 데다가 계속 울어대서 그냥 두고 올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은 집에 애완견이 있거나 알레르기가 있거나 고양이를 끔찍하게 여기는 부모가 있거나 해서 자기가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며 함께 있으면 덜 심심하고 좋지 않겠냐며 웃었다. 인영은 그 고양이를 베티라고 불렀다. 인영은 베티를 무척 예뻐했다. 마치 아기 다루듯이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나 인영이 출근한 동안 밥을 주고 똥오줌을 치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공중에 털이 날려 수시로 청소기를 돌렸다. 주말이 되면 인영은 하루 종일 베티만 불러댔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어느 날,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찬물로 샤워를 했다. 저녁이 되었고 베티의 이름을 부르며 인영이 돌아왔다. 눈 깜짝할 새였어. 하루 종일 찾아다녔어. 이 모든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아서 이상했다.

 일주일 후 인영은 베티의 사료와 밥그릇을 내다 버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무렵 간혹 밤중에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베티 아닌가? 인영이 물었다. 아직 살아 있겠어? 내가 대답하자 인영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사람이 왜 그렇게 잔인해?

 내가 일부러 내보낸 걸 안다는 말인지, 죽었을 거라는 의미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기 때문인지 헷갈렸다. 나는 인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되물었다. 내가 잔인하다고? 내가?

 아까, 혹시 노란 고양이 못 봤어요? 내가 물었다. 노랗고 컸는데. 고양이고. 나는 더 이상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해서 자꾸 같은 단어만 반복했다. 헨리는 이 동네에 고양이는 앞집에 사는 검은 고양이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집 밖에 나오는 일은 없다고 했다. 길에 사는 고양이 같던데. 내가 말하자 아마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여우일 거라고 했다. 여우? 그래요. 이 동네엔 여우가 살거든. 그래서 고양이가 없지. 아마 뭔가 노란 동물을 봤다면 그건 여우였을 거요. 하지만 작았거든요. 나는 손을 들어 크기를 가늠해 보여주었다. 여우도 크지 않아요. 고양이라고 생각해서 고양이처럼 보였겠지.

 얼굴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우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간혹 우리 집 담장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해요. 사람들이 공동정원에 고기를 갖다 놓기도 하고. 아주 깜찍한 녀석이지. 한국엔 여우가 없나보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동물원에나 가야 있을까. 그런데 그 여우는 이름이 있나요?

 헨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이 없었다. 눈가의 깊은 주름이 커다란 그의 눈과 잘 어울렸다. 아까 그 누런 털은 베티였다. 그러나 런던까지 날아왔을 리가 없잖아. 왜 그 순간 베티를 떠올리고 심지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을까.

3. 관광객들, 조슈아

 여자는 불안해 보였고 남자는 아파 보였다. 헨리는 내게 전화해서 배낭여행을 온 아시아 커플과 함께 귀가할 테니 저녁을 부탁한다고 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었어요?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잊지 않았어. 헨리의 한마디에 희한하게 화가 가라앉았다. 어떻게 아는 사람들인데?

 베티 묘비 아래에서 자고 있더라고. 내가 몰래 사진을 찍다가 들켰어. 

 헨리의 사진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쁘게 찍히길 바라는 사람들은 헨리의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본 순간 헨리가 왜 사진을 찍었는지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인종과는 무관하게 묘한 구석이 있었다. 둘은 영어가 서툴렀는데 우리와 함께 있을 때면 둘이 말할 때에도 영어를 썼다. 우리를 배려한 것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모든 대화가 어딘지 연극적으로 느껴졌다.

 헨리는 최근 들어 자주 하이게이트에 갔다. 죽음은 조금씩 움직인다, 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헨리의 죽은 가족들부터 그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있는 이들의 묘비들을 다니며 작업을 했는데 하이게이트에는 할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베티 스미스의 묘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보다 아홉 살이 많았고 유난히 키가 작아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보석’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키는 작았지만 사람을 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데스데모나 역으로 꽤 유명했다고 헨리의 할아버지는 어린 헨리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신의 과거사를 말해 주었다. 둘의 관계는 베티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는데, 자살로 판명이 났으나 할아버지는 헨리에게 그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하며 이건 둘만의 비밀로 하자며 베티 스미스의 무덤 앞에서 손가락을 걸었다고 했다. 그때 헨리의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헨리는 그때 할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아직도 간혹 그 장면이 떠오른다고 했다. 고백을 하는 할아버지의 눈빛과 그 차갑고 섬뜩했던 미소가.

 어쩌면 그건 모두 다 거짓말일 수도 있어. 베티 스미스라는 여자도 아예 모르는 사람일지도 몰라. 아버지는 처음 듣는 이름이랬거든. 어차피 증거는 없으니까. 나는 헨리에게 그 말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다. 그건 내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뒤에는 언제나 한동안 침묵에 빠져 있었다. 헨리가 생각하는 죽음의 끝에는 항상 데이빗이 있었다. 그의 아들이자 나의 어릴 적 친구였던.

 오랜 침묵의 시간이 지나면 헨리는 피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죽음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깊게 생각하면 마치 자신이 살해했거나 살해에 분명히 가담한 것 같은 확신이 든다고. 베티 스미스든 할아버지든 아니면 셰익스피어든. 그게 누구건 간에. 그래서 모든 죽음은 결국 타살이 아닐까. 언젠가는 나도 누가 죽이겠지. 물론 그게 신은 아니고. 하며 웃곤 했는데 그 모습이 내게는 우는 것처럼 보였다.

 헨리가 이사를 가던 날 나는 함께 가서 정리를 도와주었다. 일부러 짐은 꼭 필요한 것만 옮겨 놓았다. 하늘은 흐렸고 기온도 낮은 데다가 라디에이터는 잘 작동되지 않았다.

 길어야 이 개월 정도. 해머스미스의 집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에서의 삼 년은 곧 헨리와의 삶이었다. 우리의 물건들, 침대와 식기.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들. 지금은 떼를 쓰듯 그의 물건을 내어주지 않고 움켜쥐고 있지만 몇 개월 후에는 이곳으로 옮겨주어야 할 것이었다. 그 집은 없어지는 게 나을까, 아니면 낯선 사람들이라도 계속 살아서 존재하는 게 나을까? 헨리에게 물어보려다가 불쑥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여행 가요.

 어디로?

 일본 어때요? 회사 사람들이 그러는데 봄에 벚꽃이 엄청나대요. 관광객도 어마어마하고. 그리고 한국도 가깝다던데.

 헨리는 대답이 없었다. 거기에 가면 우리도 관광객이잖아요. 거기에서 내 사진을 찍어줘요. 관광객처럼.

 헨리는 낮게 웃었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정말로 가겠다는 대답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품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위수정#무덤이 조금씩#중편소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