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는 마음으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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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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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희곡

김명진 씨
김명진 씨
 저 비둘기는 왜 저렇게 더러운가. 어느 마술사의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비둘기 한 마리가 제게 오래도록 떨쳐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본디 흰빛이었을, 그러나 사람 손을 너무 타서 더 이상 희다고 할 수 없는. 본디 새였을, 그러나 더 이상 자유롭게 날지 않으므로 새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은 곧 저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질문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야 했고, 스스로 ‘문학적 증명’이라고 부르는 글쓰기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가까스로 백지는 채웠지만 답은 여전히 찾는 중입니다.

  ‘오늘의 과학’은 ‘오늘의 문학’이기도 합니다. 과학과 마술이 한 끗 차이이듯 문학과 엔터테인먼트가 한 끗 차이가 되어버린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불 꺼진 방송국 스튜디오에 앉아 저만의 무대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방송극도 아니고 연극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말과 몸짓과 빛이 각각 연기하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장르에 대한 무지가 저로 하여금 거침없이 쓰게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글쓰기가 딸을 불행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엄마,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제 글이 얕으나마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글로써 아름답고 귀한 것을 빚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신 시인 K와 추상을 구체로 디코딩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힘을 보태준 공학자 H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무엇보다 여러모로 부족한 글을 기꺼이 받아들여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결정에의 고민이 헛되이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1982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다큐멘터리 작가
 
배삼식 씨(왼쪽)와 장우재 씨.
배삼식 씨(왼쪽)와 장우재 씨.

 
▼ 신선한 필치로 그려낸 ‘존재 불안’… 문학적 공력 탁월

 
[심사평]희곡


 당선작과 논의 대상작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였다. ‘새롭게 발견된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가. 극작술의 미흡함은 대동소이하지만 당선작 외에도 고통받는 현실과 뒹굴고 있는 그들만의 고군분투를 응원하고 싶다.

  ‘살잉모의’는 온라인게임상의 욕망이 어떻게 현실에서 살인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작가가 그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의도가 살인 이후에 직접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상황, 선택의 삼박자를 타고 나타났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맛 여행’은 연극을 해본 사람이 쓴 듯 이야기 라인이 분명했다. 그러나 가족의 봉합을 암시하는 결말은 연극이 따뜻하기만 한 게 좋을까 하는 오래된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쥐’는 재치가 넘친다. 손톱을 먹은 쥐가 그 사람처럼 바뀐다는 설화적 모티브를 미래사회 인간 복제와 맞붙였다. 그러나 발상을 넘어서서 세계의 개연성이 확보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당선작인 ‘루비’는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요즘의 존재 불안을 신선한 필치로 그려냈다. 자기 세계가 있으면서, 자기 질문을 갖고 그 너머를 보려고 한 장점이 있다. 무대에 올리면 관객이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문학적 공력이 더 돋보이는 이 희곡을 선정한 이유는, 앞으로 나올 극작가들이 현실의 새로운 발견을 더욱 다양한 곳에서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세계는 양태를 계속 바꾸고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인간과 현실의 문제는 여전하다. 이제 극작가들이 답할 차례다.
 
배삼식 극작가·장우재 연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희곡#루비#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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