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新유목민’ 조선족, 그들이 사는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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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신혜란 지음/336쪽·1만8000원·이매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동포거리. 영국 런던의 조선족은 한인타운 곳곳에 스며들어 살지만 서울에서는 일부 지역에 함께 모여 산다. 동아일보DB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동포거리. 영국 런던의 조선족은 한인타운 곳곳에 스며들어 살지만 서울에서는 일부 지역에 함께 모여 산다. 동아일보DB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가난과 일제를 피해, 얼마 안 되는 세간을 이고 지고 만주로 떠난 농민들이 있었다.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은 한중 수교 이후 다시 황해를 건너 한국의 식당, 공사 현장, 공장의 노동자와 가정의 아이 돌보미로 한국 사회의 노동의 한 축을 맡아 왔다.

 황해뿐일까. 책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영국의 한인 식당에서 일하고 한국인의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조선족에 주목한다. 저자가 2010∼2014년에 걸쳐 영국, 중국 칭다오, 서울 구로동 등지에서 조선족을 인터뷰해 그린 ‘조선족 디아스포라(이산)’의 세밀화다.

 2014년 기준 영국 런던 남서부의 뉴몰덴에는 한인들이 4000명 정도 사는데, 조선족도 그 정도 된다. 조선족이 없으면 뉴몰덴의 한인 식당들은 운영이 안 될 정도다. 브로커를 통해 비합법적으로 입국한 조선족이 상당수인데, 그 과정도 만만치 않다. 4개국 정도를 거치는 건 보통이고 20개국을 경유하는 이도 있다. 중간에 단속에 걸리는 통에 입국에 6개월∼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조선족은 영국에 와서는 극도로 생활비를 아낀다. 2, 3년은 브로커에게 입국 비용으로 건넨 1만3000∼1만5000파운드(약 2000만 원 안팎)를 메워야 하고, 영국의 물가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하루 식비 50펜스(약 730원)로 가장 싼 빵과 냉동 쇠고기 약간을 사 먹으며 지내기도 하고, 17명이 한집에 함께 살기도 한다.

 영국의 조선족들은 한결같이 ‘성질 급하고 까다롭고 손이 빠른’ 한국인 고용주들에게 일을 배우며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래도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은 편이다. 영국의 한국인은 먼저 이주한 선배일 뿐 조선족과 마찬가지로 영국 사회의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조선족들은 어떨까. “우리는 중국 신분증에도 한글로 이름을 적는데 한국에서는 신분증에 영어로 쓰게 돼 있어요. 조선족은 ‘다문화’인가요, 한국 사람인가요?” 조선족은 중국에서도 받지 않던 차별을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에서 받는 설움을 토로했다.

 중국 칭다오의 조선족은 사뭇 다르다. 조선족이 한국인보다 먼저 중국에 온 이민자이고, 중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고용주는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조선족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칭다오의 한 조선족은 “한국인은 왜 내 나라인 중국에 와서도 조선족을 차별하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은 돈 벌러 해외에 나온 조선족에 문제를 야기했다. 영국의 한 조선족은 “15년 전 1파운드는 중국 돈으로 15위안이 넘었는데, 요즘은 10위안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집 한 채를 살 만한 돈을 모았지만 이제는 별로 큰 금액이 아니게 됐다. 귀국의 종착점이 멀어진 것이다.

 현지에서 자란 자녀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제 딸들은 헷갈려 해요. 영국 사람은 분명히 아닌데, 중국 사람이라고 하려니까 중국말도 못 하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니 한국에 가본 적도 없고. 저는 ‘엄마는 차이니스 코리안인데, 넌 브리티시 차이니스 코리안이야’라고 했다가, 더 크면 ‘넌 코리안 맞아. 증조할아버지 때 함경북도에서 중국에 왔다가 이렇게 됐어’라고 하지요.”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계화로 지리적 뿌리내림이 흔들리면서 부유하는 개인은 공허함을 느낀다”며 “불안 속에서 더 나은 직장을 찾아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조선족”이라고 말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신혜란#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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