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정국에 시대를 다시 읽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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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로 분노와 절망이 커지면서 현 상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대응법을 찾기 위해 관련 책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있다. 19일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동아일보DB
‘최순실 사태’로 분노와 절망이 커지면서 현 상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대응법을 찾기 위해 관련 책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있다. 19일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동아일보DB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사회를 뒤흔드는 가운데 한국 현실을 비판하거나 현재 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예년에 비해 책 전체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것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차병직 변호사 등이 쓴 ‘지금 다시, 헌법’(로고폴리스)의 인기는 책의 성격상 이변에 가깝다. 18일 출간되자마자 일주일 만에 초판 5000권이 대부분 소진돼 곧바로 2쇄를 찍을 예정이다. 2009년 출간한 ‘안녕 헌법’의 개정판으로, 헌법을 소개하고 행간에 담긴 의미를 찬찬히 짚었다.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외쳤고,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탄핵 등을 둘러싸고 헌법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경은 로고폴리스 편집자는 “출간 시기가 현 사태와 우연히 맞아떨어졌다. 헌법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베개 출판사가 이달 초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전국 20개 서점에서 ‘순siri 도서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 레비 지음),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저자가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며 프랑스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에 맞서 싸우라고 호소한 ‘분노하라’는 매달 100권 정도 나가다 이달에는 3주간 320여 권이 판매됐다. ‘이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저자가 직접 경험한 공포와 극한의 폭력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고찰한 책이다. 평소 한 달에 200여 권이 판매되던 이 책은 이달 들어 매주 100권이 나가고 있다.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순siri 도서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면서 책 제목 때문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가에 대한 저명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바람직한 국가관을 모색한 ‘국가…’는 월평균 500여 권이 판매됐는데 이달에는 3주 만에 2300여 권이 나갔다.

 이 컬렉션을 판매하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 한양문고 김민애 실장은 “출간된 지 5년 이상 돼 관심이 높지 않았던 책들인데, 현 시국에 맞춰 따로 모아 선보이니 흥미로워하며 눈여겨보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한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지음·민음사)는 지난해 5월 출간됐지만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판매 속도가 2배로 늘어 한 주에 500권 이상 나가는 추세다.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는 “제목이 현 시국에 분노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데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 내용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국가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참담하게 붕괴돼 버린 현실 앞에서 나라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진단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선의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근거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는 노력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최순실#국가란 무엇인가#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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