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되살아난 인도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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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개봉 ‘무한대를 본 남자’ 실제 모델

인도의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을 다룬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 11월 3일 개봉한다. 판시네마 제공
인도의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을 다룬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 11월 3일 개봉한다. 판시네마 제공
 “방금 타고 온 택시의 번호판은 1729였어. 13의 배수인 숫자라 불길한 징조라는 생각이 들어.”

 “아니에요, 그건 정말 재밌는 숫자입니다. 12³+1³과 10³+9³로 풀어지니, 세제곱한 두 숫자를 합해 얻을 수 있는 수 중, 두 쌍의 답이 같은 가장 작은 수잖아요.”

 11월 3일 개봉하는 영화 ‘무한대를 본 남자’에선 실제 모델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그의 제자인 스리니바사 라마누잔과 이야기를 나눈다. 스승은 택시 번호를 불길하게 받아들였지만 제자는 순식간에 암산을 끝내고 숫자 속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영화 속 천재 수학자인 라마누잔은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을까.

 라마누잔은 직관적으로 숫자의 신비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타고났다. 1887년 인도 빈민가에서 태어나 27세에 영국으로 건너간 뒤 자연수의 분류 연구로 명성을 떨쳤다. 수리분석, 정수론, 무한급수, 연분수 분야 등 3900개에 달하는 수학 공식과 이론을 증명해 ‘제2의 뉴턴’이라고까지 불렸다. 특히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수의 분할’ 공식을 증명하는 데 성공해 인도인 최초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의 이런 천재성을 발견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데리고 와 함께 연구했다.

 라마누잔은 실제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자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는 수학 공식을 만들 때 지루하고 복잡한 유도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결론을 내는 방식을 선호했다. 영국 학자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그의 연구 성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라마누잔은 “고향의 ‘나마기리’ 여신으로부터 수식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라고 해명해 더 큰 반발을 사곤 했다.

 게다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영양실조에 결핵까지 걸렸다. 결국 영국에 간 지 5년 만인 1919년 인도로 돌아와 다음 해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라마누잔이 영국 학자들과 부딪친 근본 배경에는 두 문명의 수학 연구법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수학을 토대로 발달한 서구 문명은 연역적인 추론과 논리적인 전개과정을 중요시한다. 반면 인도 수학은 직관과 결과 자체를 중요시한다. 김종명 관동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2010년 2월 한국수학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고대 인도 수학의 특징’을 통해 “인도 수학은 종교철학과 천문학 그리고 언어학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도의 수학책들은 경전이면서 문학작품이었다. 수학책인 ‘릴라바티’, ‘수트라’, ‘수리아 싯단타’ 등은 시(詩) 형태로 기록돼 있다. 인도의 지식인들은 수학책을 경전처럼 암송하고, 수학 문제를 시로 만들어 푸는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나고 자란 라마누잔도 직관에 의지해 숫자의 신비를 파헤치는 방식을 선택했던 셈이다. 더구나 가난한 그는 종이 살 돈도 부족했다. 공식을 자세히 쓰지 않고 결과 위주로 적어 두었는데, 그중 일부는 현대 수학자들도 아직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라마누잔이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공식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파이로 향하는 무한수열’이다. 고교과정에서 일부 다루지만 라마누잔이 밝혀 낸 공식을 제대로 증명하려면 대학 수학 과정을 거쳐도 부족하다. 이 이론은 블랙홀, 양자이론, 끈이론 등 현대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두루 쓰이고 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2014년 수상한 만줄 바르가바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영화 추천사에서 “라마누잔의 연구는 수학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며 발군이다”라며 “그의 노트에 쓰여 있는 한 줄 한 줄이 보물상자와 같다”라고 호평했다.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
#라마누잔#무한대#영화#무한대를 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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