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란하고 치밀한 합주 가을밤 촉촉이 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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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계 슈퍼 듀오’ 브래드 멜다우-조슈아 레드먼 콘서트

《 2016년 재즈가 제시하는 가장 이지적이며 미학적인 이중주. 그것을 15일 밤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독보적인 연주력과 아이디어로 전 세계 40대 재즈 연주자 가운데 가장 뜨거운 족적을 찍어온 미국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46)와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먼(47)의 듀오 공연이다. 두 천재는 이날 첫 곡부터 가벼운 애피타이저가 아닌 묵직한 선언을 서빙했다. ‘Jedediah.’ 멜다우가 지은 이 곡은 미국 법학자 제더다이아 퍼디에 대한 헌정으로 추정된다. 멜다우는 2000년 해외 인터뷰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냉소주의를 비판한 퍼디의 저서를 원용해 음악계 현실을 꼬집었다. 》
 
15일 밤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국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왼쪽)와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먼. 정확히 90분간 7곡을 연주한 둘은 즉흥적 낭만에 기대는 대신 지적이고 정밀한 연주로 독백과 대화의 경계를 융해했다. LG아트센터 제공
15일 밤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미국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왼쪽)와 색소포니스트 조슈아 레드먼. 정확히 90분간 7곡을 연주한 둘은 즉흥적 낭만에 기대는 대신 지적이고 정밀한 연주로 독백과 대화의 경계를 융해했다. LG아트센터 제공
 G 마이너로 출발해 G 메이저로 내려앉는 멜다우의 짧은 주제 악절이 시작이었다. 2000년대 라디오헤드와 비견될 멜다우 특유의 멜랑콜리. 당김음이 섞인 빠르고 혼돈스러운 8분의 7박자 테마를 향해 레드먼은 소프라노 색소폰을 들어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왼손의 3연음 반주 위로 오른손 선율을 발전시키며 멜다우가 연파랑 바닷물을 출렁거리자 그곳을 레드먼은 시커먼 잠수함처럼 침입해 공존했다.

 실은 2011년 유럽 공연 실황인 둘의 최근 듀오 앨범 ‘Nearness’에서 한 곡만 택해 들려주는 대신 둘은 이날 그 이상으로 탄탄한 신곡들을 과시함으로써 5년의 시간차를 무색하게 했다. 변칙박자 위를 유영하는 둘의 유니슨(unison·같은 선율 함께 연주)과 인터플레이(interplay·상호 작용 연주)는 단순한 임시변통의 연쇄가 아니었다. 능란하고 치밀했다.

 둘째 곡 ‘High Court Jig’에서 레드먼은 테너 색소폰으로 우스꽝스러운 셔플 리듬 테마를 제시했다. 그 위로 멜다우가 정박에 촘촘히 음표를 찍어 넣으면서도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건축 미학을 보여줬다.

 셋째 곡은 텔로니어스 멍크의 ‘Let's Call This’. 레드먼이 자랑하는 테너 색소폰의 따뜻하고 두툼한 음색이 여기서 치고 나왔다. 툭툭 튕겨내며 상향하는 음계를 따라 그것은 검붉은 와인처럼 객석에 번졌다. 후반부, 레드먼의 코믹한 연쇄 스타카토를 멜다우는 단속적 음표로 받아내며 능숙한 포수로 나섰다. 레드먼은 발끝 하나 까딱대지 않고도 정확한 리듬감으로 멜다우의 복잡한 타건에 맞섰다. 각자 종횡하던 둘이 테마에서 합류하는 장면은 드럼과 베이스가 없기에 더 극적이었다.

 넷째 곡은 제목조차 없는 멜다우의 신곡. 왼손과 오른손이 드럼의 두 북처럼 번갈아 질주하는 피아노 테마는 8박과 7박의 빠른 연쇄를 만들었는데 그 속에서 둘은 돌림노래처럼 서로를 희롱하며 모사했다.

  ‘Nearness’에도 실린 찰리 파커의 곡 ‘Ornithology(조류학)’은 하이라이트였다. 레드먼은 비로소 날개가 말랐다는 듯 솔로 중 연방 신음을 지르며 오른다리 왼다리를 움찔움찔 들었다. 멜다우는 왼손과 오른손을 제각각 진행시키는 정신분열적인 솔로로 레드먼이 앗아간 객석의 시선을 조용히 탈환했다. ‘Nearness’에 실린 ‘The Nearness of You’ ‘Mehlsancholy Mode’를 듣지 못한 것만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재즈 연주자들에게 경험과 기량이 마침내 황금비율을 이루는 40대는 최전성기의 시작점이다. 앙코르 곡 ‘Soul Dance’가 끝난 뒤 둘은 객석을 향해 한 차례 머리 숙이고 걸어 나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퇴장 아닌 입장 같았다. 역사 앞을 향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재즈#조슈아 레드먼#브래드 멜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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